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장영엽 편집장] 안녕, 서울극장
장영엽 2021-08-27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칸국제영화제 60주년을 맞아 제작된 옴니버스영화다. 역대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 35명이 ‘극장’을 테마로 연출한 3분여가량의 영상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이 작품에서, 차이밍량 감독은 <꿈>(It’s a Dream)이라는 단편을 통해 한 오래된 극장에 얽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 차이밍량의 꿈속에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 소년 시절의 감독 자신, 노년의 어머니와 영화를 사랑했던- 사진으로 존재하는- 할머니가 등장한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놓인 네 가족이 오래된 극장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는 <꿈>의 마지막 장면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의 배경은 운영을 종료한 말레이시아의 단관극장이다. 아마도 이곳은 말레이시아 출신인 차이밍량 감독이 유년 시절 영화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간 장소일 것이다. 극장에 대한 그의 애정과 추억은 그대로인데, 시간은 야속하게도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마모시킨다. 흘러가는 시간과 고여 있는 시간이 공존하는 꿈속에서 기쁨과 동시에 슬픔을 느끼는 차이밍량의 <꿈>은 언젠가 무엇이 그리워질 때,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되리라는 막연한 짐작을 하게 만들었다.

오는 8월 31일 영업 종료를 알린 서울극장의 폐관 소식을 접하고 다시금 차이밍량의 <꿈>을 떠올렸다. 1978년 개관한 이래 많은 이들에게 <꿈>의 극장과 같은 존재였을 서울극장의 작별 인사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라고 해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남긴다. 이번호에서는 한국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이자 지난 43년간 종로의 영화 문화를 이끌었던 서울극장의 발자취를 조명하는 기획 기사를 준비했다. 서울극장의 영업 종료 소식을 들은 직후부터 <씨네21>은 고은아 회장과 곽승남 사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이들은 코멘트 대신 서울극장의 역사를 담은 사진을 공유하고 싶다며 오래된 앨범 두권을 <씨네21> 앞으로 보내왔다. 1978년부터 2005년까지의 서울극장의 역사를 빼곡히 기록한 소중한 자료를 공유해준 서울극장의 경영진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배동미 기자가 꼼꼼하게 취재한 서울극장 43년의 역사를 눈여겨봐주시길 바란다.

이번호에는 지난 1986년 28살의 나이로 서울극장에 선전부장으로 취직한 이준익 감독의 서울극장 비하인드 스토리도 수록되어 있다. 영화 <1987>의 배경이 되었던 시대, 느닷없이 극장 안으로 시위대와 백골단이 들어오고 최루탄 가스까지 퍼져 관객이 눈물 콧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영화는 멈추지 않았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올여름 서울극장의 영사기는 멈추지만, 관객의 마음속에서 서울극장의 추억은 영원히 상영될 것이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