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자살 폭탄 테러가 끊이지 않는 카불에도 일상과 웃음이 있었다. 아부자르 아미니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카불, 바람에 흩날리는 도시>(2018)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단순히 전쟁에 신음하는 황량한 도시로만 그려내지 않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세력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많은 사람, 특히 여성들의 목숨과 권리가 위협 받는 상황에서 생존은 삶의 목표가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나고 자랐고, 그의 연출작 <카불, 바람에 흩날리는 도시>가 지난 2019년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는 아부자르 아미니 감독과 간신히 연락이 닿아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 내내 그는 한국 영화계를 포함한 국제 사회에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예술인에 대한 연대와 관심 그리고 지원을 호소했다.
-현재 안전한가.
=탈레반은 총과 총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다시 점령하고 미국을 쫓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카메라다. 그들은 전 세계 이목을 끄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이 얼마나 어둡고 못났는지 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을 마주하는 걸 두려워한다. 모든 괴물 앞에 거울을 둘 수 없는데 만약 괴물이 자신을 마주한다면 괴물은 거울과 거울을 둔 당신을 깨뜨릴 것이다. 그 점에서 영화감독은 그들의 사회 발전의 최전선에 있는 문화적 군인들이라 할만하다. 이상적인 세계에서는 안전하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이제 어떤 종류의 자유와 진보도 믿지 못하는 극단주의자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틀 전, 탈레반의 핵심 지도자는 “선거도, 투표도 없고 오직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수장국(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 탈레반이 변경한 아프가니스탄의 새 국호-편집자)만 있다”고 선언했다. 이 말은 예술가, 영화감독, 문화 활동의 자유가 그들에게서 빼앗겼다는 것을 의미하고, 문화예술인들은 가장 강력한 의미에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탈레반이 문화, 영화 분야에서 활동했던 많은 사람을 처형 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매일 어떻게 지내고 있나.
=공포는 사람의 뼛속까지 깊이 느낄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은 쇼크 상태다. 우리는 탈레반을 안다. 그들이 일으키는 어둠을 알고 있다. 그들은 바뀌지 않았다. 사람들은 희망을 잃었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미국과 그리고 세상에 배신감을 느낀다. 카불은 매일 조금씩 목숨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이 나라를 탈출하려고 한다. 하늘이든 흙길이든 뭐든. 아프가니스탄의 많은 어머니가 매일 자식을 잃어가는 카불의 풍경은 너무 가슴이 아프다. 카불을 너무나 사랑했던 카불의 아이들은 이제 카불을 떠나 최대한 멀리 가고 싶어 한다. 카불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꿈의 도시였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살아남기 위해 탈출하려고 한다. 영화인, 음악가, 작가, 언론인 등 카불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이들이 떠나고 있다. 나도 카불을 탈출했다. 아직도 내 도시, 카불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내가 미친 듯이 사랑하는 그곳. 내 핏줄에 생기를 불어넣는 먼지투성이인 바람의 도시.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 때문에 대답하는 게 너무 힘들다.
-언제 탈출했나.
=이미 두 달 전에 카불을 떠났다. 하지만 즉시 대피해야 할 가족과 친구들이 그곳에 남았다. 그들에게 편지를 썼던 지난 사흘 내내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카불에 있는 가족, 친구, 다른 영화인, 예술가, 문화 활동가들과 쉴 새 없이 연락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 위험에 처했다. 우리는 그들을 대피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 카불 국제공항은 몰려든 인파 때문에 아수라장이 되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우리를 포함한 전 세계 영화인, 영화제, 문화 단체로 구성된 영화 가족이 많은 힘을 보태주고 있고, 그들의 단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내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점령했을 때 어땠나.
=모든 꿈이 사라졌다. 갑자기 추워졌다. 엄마가 보고 싶은 것 같았다. 아름다운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색이 암흑으로 변하는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음악이 사라지는 동시에 거칠고 공격적인 사운드가 들어왔다. 그들이 카불을 다시 점령했을 때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되었고, 내 형제자매 모두 난민이 되어 지구 구석구석에서 길을 잃게 될 거라는 걸 느꼈다.
-지난 20년은 아프가니스탄의 영화와 문화, 예술 그리고 젊은 세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
=지난 20년 동안 우리 정부는 매우 부패하고 사기적이었지만, 아주 작게나마 민주주의가 시작되는 분위기였다. 주로 문화예술인, 영화인, 언론이 그러한 분위기를 주도하고, 이끌었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가르치는 학교 대신 젊은 세대와 구세대가 함께 공부할 수 있는 평범한 학교들이 많이 생겼다. 특히 하자라 민족(아프가니스탄은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로, 하자라 민족은 다이쿤디주에 사는 소수 민족이다-편집자)은 가장 진보적이고 세속적이다. 이곳의 여성들은 기업,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리더로 활동했다. 카불의 서쪽에만 있는 카불에는 아이들이 외국어를 포함해 최신식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고등 교육 기관만 수백 개 있었다. TV와 영화에는 어떤 검열도 없었다. 언론은 대통령을 포함해 누구라도 비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사라졌다.
-당신의 전작 <카불, 바람에 흩날리는 도시>에는 자살 폭탄 테러가 사건으로 등장한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재점령하기 전에도 자살 폭탄 테러가 종종 벌어졌나.
=<카불, 바람에 흩날리는 도시>는 삶과 희망을 다룬 영화였다. 그것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삶에 대한 거대한 열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비겁한 자살 폭탄 테러 때문에 아무리 삶이 고달프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삶과 행복을 위해 노래한다. 내 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탈레반과 IS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벌여 무고한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 그들의 목표는 주로 하자라 민족이었다. 하자라 민족은 이슬람 근본주의와 다른 종교적 분파를 가진 소수 민족이다. 원래는 불교 신자였다. 한국인들도 기억하겠지만, 지난 2001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 석불을 파괴한 적 있다. 그들은 하자라 민족이 이단자고 마땅히 살해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이 권력을 다시 잡으면서 하자라 민족은 큰 위험에 처했다. <카불, 바람에 흩날리는 도시>를 3년 동안 촬영했다. 그 기간 카불에서만 하자라 민족에 대한 자살 폭탄 테러가 15건이나 발생했다. 그중 몇몇은 촬영장에서 멀리 떨어졌고, 또 몇몇은 촬영장에서 가까운 곳에서 벌어졌다. 2016년 7월 23일 수천 명에 이르는 하자라족 사람들과 함께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다가 시위대 틈에서 큰 폭탄 2개가 터져 100여 명이 사망하고 4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던 적도 있다.
-당신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나고 자랐다. 영화감독이 되려고 했던 계기가 무엇인가.
=아프가니스탄은 수천 개의 동화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져 오고 있다. 지금도 사람들이 한데 모이면 그중 한 사람이 우리 말로 이야기를 하는 풍습이 있다. 우리 아버지도, 할머니도 동화를 잘 들려주셨다. 스토리텔링은 우리 민족의 핏줄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높은 산들로 가득하고, 나는 항상 이야기와 산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왜냐하면 산에 둘러싸여 있으면 상상력이 좋아진다. 저 산 뒤에 무엇이 더 있는지 더 궁금해진다.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판타지는 상상할 수 있으니까. 어린 시절 접했던 동화들은 매우 동양적이었다. 그 동화 모두 어떤 식으로든 아시아의 고대 설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시아적인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일본영화, 특히 1950년대 일본영화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전쟁이 끝난 뒤 제작됐기 때문에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았다. 항상 총소리가 끊이질 않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성장한 나로서는 그 영화들에 공감할 수 있었다. 나는 소련이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태어났다.
-한국 영화계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과 연대하기 위해 무엇을 하면 될까.
=공동 제작과 산업 포럼 등 영화제 프로그램 및 영화와 관련된 플랫폼에 아프가니스탄 영화인들을 포함해주었으면 좋겠다. 특히 젊은 아프가니스탄 영화인들에게 적어도 2년 동안 영화를 제작할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아프가니스탄이 영화제나 플랫폼이 요구하는 기준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프가니스탄 영화인들과 연대하는 목소리를 높여주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큰 목소리가 필요하다. 한국 정부에 아프가니스탄 영화인들에 대한 지원을 요청해달라. 아프가니스탄 영화인들과의 공동 제작을 시도하고, 젊은 영화인들에게 영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길 바란다.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가.
=앞으로도 영화를 계속 찍겠다. 세상에 들려줘야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디아스포라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영화인들과 연대해 우리가 협력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자립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지지와 연대가 절실하다.
-카불의 봄이 다시 올까.
=당연히 올 것이다. 모든 것이 탈레반이 나라를 운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어떤 폭정이나 억압도 영원히 지속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않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