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할 게 있다. 나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무슨 소리냐면, 진짜 무슨 스파이로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사람들이 잘 상상하지 못하는 취미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주야장천 앉아서 책만 읽고 글만 쓸 것이라는 사람들의 짐작과는 달리 나는 스포츠를 매우 좋아하고, 꽤 오랫동안 춤을 춰왔다. 춤의 종류가 바뀌기도 했고, 바빠서 놓았던 적도 있지만 춤을 좋아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7살 때 유치원에서 처음 발레를 배우고, 13살 때 힙합 댄스를 처음 배운 이후로 한번도.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춤추는 영상을 올려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일을 무슨 연례행사처럼 하고 있다. 책으로 가득한 배경 앞에서 조곤조곤 말하는 것만 봐왔던 신규 구독자들은 어김없이 놀란다. 몇달 전에 올렸던 스트리트 댄스 영상에는 ‘당신 누구야… 김겨울 어디 갔어…’라는 댓글이 달려 한참 웃었다. 보통은 서브 채널에만 춤 영상을 올리지만 이번엔 본채널에도 아주 짧게 몇초의 영상을 올렸고, 댓글창에는 겨울서점 역사상 가장 많은 물음표가 찍혔다.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재미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책과 춤이 그렇게까지 먼 것일까, 싶어지기도 한다. <책의 말들>을 읽은 독자 중에는 내 인스타그램에서 춤을 추는 영상을 발견하고는 ‘약간 깼다’는 반응을 보인 독자도 있었는데, 그 대목에서는 내 머릿속에 거대한 물음표가 찍혔다. 진중한 글을 쓰는 작가는 춤을 추면 ‘깨는’ 건가? 유튜브에서 내 춤 영상을 보고 구독을 취소하는 사람들도 있을까?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춤추는 영상을 그만 올려야 하나?
내가 쓰는 글은 나의 신체 감각에 상당 부분 기초하고 있다. 특히 문학적 감수성이 관여되는 글을 쓸 때는 추상적인 감정을 다루기 위해 구체적인 신체 감각을 총동원하며, 시를 쓸 때 이 감각은 극대화된다. 나는 추상을 만지고 맛보고 잡아 늘려보고 삼켜본다. 내 글은 내 몸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나는 몸의 감각을 예민하게 유지하는 일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몸의 근육을 하나하나 찾아내는 것, 찾아내서 원하는 방향과 속도와 강도로 움직이는 것, 늘리고 줄이고 던지고 잡는 것. 현대무용 안무를 추고 있을 때 느껴지는 신체의 무한한 쓰임과 스트리트 댄스 안무를 출 때 느껴지는 정확한 제어 감각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글에 스며든다.
하지만 뭐, 그렇지 않다고 해도 상관없다. 설령 업로드를 멈춰도 나는 계속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건 제법 행복한 일이니까. 화면에 맞춰 춤을 추는 게임인 <저스트댄스>를 플레이하는 사람 중에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웃겨서 웃든, 쑥스러워서 웃든, 재미있어서 웃든, 춤을 추는 사람은 언제든 어떻게든 웃고야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