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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갈매기' 중년 여성의 미투를 다룬 김미조 감독의 첫 장편작
임수연 2021-07-23

수산시장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오복(정애화)에게는 온전히 자기만의 삶이 없다. 그는 가족의 실질적인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 혹은 노동권 보장이란 큰 뜻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하는 상인 중 하나로 규정돼왔다. 세딸을 키우기 위해 시장에서 파는 생선은 사실 오복이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이다. 그런 그가 첫째 딸 인애의 상견례가 있던 날 기분이 좋아 술을 마시다가 동료 상인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갈매기>는 중년 여성의 미투를 다루고 있지만 성폭력 자체에 대한 묘사는 일부러 배제한다. 간밤에 오복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서, 공중목욕탕에서 남몰래 하혈의 흔적을 지우는 모습으로 관객이 사건을 유추하게 하는 식이다. 인애에게 성폭력 사실을 고백하는 순간도 의도적으로 생략하며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말하는 것 역시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임을 잊지 않는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보다 생리대로 어떻게든 하혈의 흔적을 지우려는 오복의 모습은 피해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오히려 두려워하는 약자의 심리를 담는 탁월하고 신중한 장치다. 성폭력 자체는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되 그 후유증을 너무 착취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옮겨낸 감독의 섬세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대신 <갈매기>는 영화 초반 발생하는 성폭력 이후 오복이 겪는 2차 가해, 3차 가해를 묘사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먼저 여성의 고통보다 남성의 미래를 막는 것이 더 큰 잘못인 것처럼 인식한다거나 성폭력 사건에 대한 경찰의 소극적인 태도는 현실의 사건과도 합치되는 부분이 많다. 여기에 더해 미디어에서 제대로 조명된 적이 거의 없는 중년 여성 노동자의 성폭행이 어떠한 이유로 이중, 삼중의 피해를 입는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는지 밀도 높게 묘사했다.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동네 공동체의 특성, 노동운동 내 자기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 “성폭행은 여자가 응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다”라는 끔찍한 말이 공기처럼 오가는 나이대에 속해 있다는 점 등이 영화가 다루는 성폭력 사건을 점진적으로 구체화한다.

동시에 <갈매기>는 오복을 그저 성폭력 피해자로 정의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우선 주변 가족과 상인들과의 관계 묘사가 구체적이며 그간 오복의 삶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준다. 매사에 눈치가 없는 남편, 치매에 걸려 딸의 조심스러운 고백에 답을 주지 못하는 어머니,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공무원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첫째 딸, 가끔 전화해서 자기 얘기만 늘어놓는 둘째 딸, 그리고 남의 일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 셋째 딸은 오복과 각기 다른 관계를 맺으며 오복의 캐릭터를 구체화한다.

하지만 <갈매기>의 탁월한 점은 오복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그치도록 두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궁극적으로 <갈매기>는 세상에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중년 여성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오복의 고백에 브레이크를 거는 장벽이었던 노동운동의 풍경이 오복이 자신을 위한 투사로서 거듭나는 순간으로 대치될 때의 벅차오르는 감동을 <갈매기>는 정확하게 포착한다.

영화를 연출한 김미조 감독은 단편 작업 때부터 꾸준히 여성이 받는 폭력을 담아왔다. <혀>(2017)는 지난 밤 선생님이 자신에게 혀를 넣었다고 주장하는 ‘마음이’와 이를 부정하는 선생님,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남자의 모습을 통해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둘러싼 사람들의 기울어진 인식을 보여줬다.

<혐오가족>(2019)은 변태성욕자인 교수 아빠,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엄마, 엄마를 혐오하는 아들, 남성을 혐오하지 않는 여성을 혐오하는 딸로 구성된 가족이 아빠의 성추행 범죄를 마주한 후 겪는 요동을 담았다. 여성의 이야기를 예리하게, 때로는 파격적으로 담아왔던 김미조 감독의 첫 장편영화 <갈매기>는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대상을 수상했다.

CHECK POINT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

김미조 감독은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를 좋아해서 영화의 제목을 <갈매기>로 지었다고 밝혔다. 자유로운 두 날개를 가졌지만 육지 곁을 맴돌기만 하는, 멀리 날아갈 기세로 부지런히 날갯짓을 해대지만 결국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엄마를 떠올렸다고 한다.

미투 운동

<갈매기>의 기획이 시작된 2018년 5월은 서지현 검사의 미투를 시작으로 위계에 의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폭발적으로 확산됐던 시기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고, 정확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진실은 알 수 없다며 피해자에게 가해지던 수많은 2차 가해에 대한 비판 역시 함께 대두됐다.

배우 정애화

<갈매기>는 정애화의 영화다. 오복을 연기한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책임지며 온전히 자신을 위한 발화를 시작한 여성의 변화를 단단하게 보여준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죄 많은 소녀> <더스트맨> 등에 출연한 그는 독립영화와도 인연이 깊은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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