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이주자는 지구에서 보낸 이전의 삶을 어떻게 회고하고 기록할 것인가. 오정연의 첫 소설집 <단어가 내려온다>에 실린 이야기들에서는 행성간 이동이 중요하게 제시된다. 7편의 소설에는 이주, 적응, 가족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존재(감)가 없는 아버지와 서로에 감정적으로 매여 있는 모녀가 이야기의 중심에 서는데, 가장 중요한 이슈는 ‘전망’과 ‘회고’의 문제다. 행성간 이주는 이전의 삶과 단절된다는 뜻일 수밖에 없으며, 과거를 돌아본다는 일은 의식적인 해석의 문제가 된다.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가작 수상작이자 작가의 데뷔작인 <마지막 로그>는 이상적으로 통제되는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 모든 게 통제되지만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그리움과 갈등은 그렇지 않다. <단어가 내려온다>는 화성으로 이주하는 딸과 엄마가 주인공이다. 소설 속 세계에서는 “15세 즈음, 사람에겐 단어가 하나씩 내립니다”. 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단어를 받게 되는데, 어머니를 따라 이주해야 하는 딸은 지구에서 한국어로 된 단어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화성행이 결정된 일이 못내 불안하다.
<분향>은 “21세기 말에 ‘한민족’이 ‘차례’를 지내고 있다는 사실보다 놀라운 일은 없을 것이다”의 이야기다. 분향이 여전히 중요한 (미래의) 한민족은 화성 이주 뒤 공허감을 느끼는 저중력증후군 혹은 무중력증후군에 시달리다가 엉뚱하게도 민족 정체성의 ‘뿌리’와 이어지는 방식의 해결책을 택한 상황이다. <미지의 우주>는 딸 우주와 함께 화성으로 터전을 옮긴 엄마 미지의 이야기. <행성사파리>는 먼저 죽은 언니의 유전자 복제로 태어난 미아가 쌍둥이지구를 여행하는 내용.
사는 장소가 바뀐다고 해서 이전의 삶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혼란은 있을지언정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잘 알고 있다. “지금은 없을지도 모르는 별을 이렇게 멀리 있는 내가 알아본다면, 그만한 기적이 또 어디 있을까.” 별빛이 먼 시간을 이동해 우리 망막에 닿는 것처럼, “지금 그들이 우리와 같은 세상에 있건 없건 상관없이, 그들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멀거나 가까운 미래에 분명한 차이를 가져온다”. 기억할 수 있다면 몇 광년의 이별에도 울지 않을 수 있다. 바라기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