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씨네21> 통신원들이 보내오는 리포트를 매주 흥미롭게 읽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국내에 아직 개봉하지 않은 화제의 영화 소식을 미리 접하는 즐거움이 컸다면, 최근에는 코로나19 이후 각국의 영화계 상황은 어떤지, 유례없는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내고 있는지 궁금한 마음에 원고를 유심히 보게 된다.
지난 1년간 통신원들이 전한 소식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전세계 영화계의 창의력 전쟁이라고 할 만하다. 록다운 기간이 길어지자 아예 비대면 프리프로덕션을 통해 비대면을 소재로 한 코믹 스릴러 영화를 연출한 감독(프랑스)부터 영화제(film festival)에서 영화(film)라는 단어를 빼고 TV시리즈, 팟캐스트, 게임, 콘서트를 포괄하는 축제로 거듭난 뉴욕 트라이베카페스티벌(미국), 영화제 중심부를 벗어나 고풍스러운 유적지에서 관객을 만나는 베를린국제영화제 서머 스페셜(독일)의 사례까지 그야말로 개인과 단체를 막론하고 각양각색의 대처 방식과 아이디어가 빛났다.
이번호에 손주연 런던 통신원이 보내온 리포트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눈길을 끈다. 팬데믹으로 유럽 영화산업이 초토화된 가운데 영국의 영화와 TV 산업이 대여할 스튜디오와 장비가 부족할 정도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런던이나 런던 근교 어디에도 램프나 발전기가 한대도 없어” 동유럽에서 들여올까도 생각했다는 영국 영화인들의 코멘트를 읽으며 대체 어떻게 이런 호황이 가능했나 싶었는데 지난해 10월 영국 정부가 세운 ‘영화와 TV 재시동 계획’ 덕분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영국 로케이션 기반의 영화가 코로나19로 손실을 겪는다면 그 손해를 영국 정부가 보상한다는 취지의 정책인데, 이 법안이 보전한 영상 산업의 일자리만 2만4천여개에 이른다. 런던으로부터 도착한 통신원 리포트를 읽으며 ‘현실과 괴리된 정책보다 영화인을 위한 코로나19 지원금 지급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라 외치던 한국과 이탈리아 영화계의 풍경이 오버랩됐다. 드디어 관객의 눈길을 끌 대작영화들이 여름 극장가에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지만 배급업계, 극장업계, 유료방송업계의 지원책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극장으로부터 수익을 얻지 못해 차기작 개발에 소극적인 투자배급사, 제작사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때로는 개개인의 창의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의 풍경들을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당도하기 전에, 영화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