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매일 마시는 사람이라면 커피의 역사를 좀 알아볼까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들 수 있을 텐데, 막상 읽어가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커피의 역사라는 것은 19~20세기 세계사, 특히 자본주의의 역사와 떼어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국제적 커피 시장의 시작은 노예 혹은 노동자 착취를 통한 자원 생산이다.
커피 열매가 놀라운 맛을 낸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브라질을 비롯한 여러 나라 농장주들은 처음에는 노예를, 이후 원주민이며 이주 노동자들을 투입하여 하루에 열 몇 시간씩 가혹하게 일을 시켜가며 커피 원두를 생산한다. 원두는 미국으로, 유럽으로 팔려가 그들의 문화를 바꾼다. 수많은 이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창조적이고 불온한 공간 커피하우스가 탄생한다.
미국 자본주의 팽창기에 원두를 수입하고 로스팅을 하여 가정이나 회사까지 전하는 시장에 각종 기업이 뛰어든다. 국제 교역과 밀접하게 결부되었기에 1929년 주식 시장 붕괴 2주 전 커피 시장이 무너지는 사건도 벌어진다. ‘포스트 시리얼’로도 유명한 포스트 회장이 커피가 건강에 나쁘다며 깎아내리는 마케팅을 통해 자기네 대안 음료를 팔아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그가 죽은 뒤로 사업에 참여한 딸이 맥스웰하우스 커피를 인수해서 돈을 번 아이러니한 사연 등 기벽 심한 자본주의 모험가들의 이야기가 커피 시장의 발전을 무수히 수놓는다.
남성 위주 커피 시장에 애써 발을 들여 성공한 여성 사장의 이야기도, 전쟁을 계기로 인스턴트커피 시장이 발전한 이야기 또한 커피와 함께 짚어보는 20세기 역사의 한 자락이다. 커피를 싸게 먹고 싶은 미국 소비자의 바람과 날씨 탓에 자주 급변하는 원두 가격을 방어하고 싶은 원산지 국가들의 바람이 냉전을 비롯한 국제 정세와 맞물려 한참 줄다리기를 해온 역사, 커피의 맛 자체를 따지고 원두를 그 자리에서 직접 갈아주는 스페셜티 커피에 관한 관심이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 커피 생산 및 유통 시스템에 내재한 불평등을 바꾸어보고자 하는 공정 무역 커피가 관심사로 떠오른 최근의 흐름까지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한 책이다.
커피의 역사
“커피는 불평등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혀 있다.” (7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