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가 쓴 책은 많다. 그중 일부를 읽어본 소감을 한 문장으로 말하면 “아나운서는 셀럽이 아니고 직장인이다”라는 것이다. 여전히 그 직업을 선망하는 청년이 많을 것이기에, 아나운서들이 낸 책에는 ‘어떻게 하면 아나운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방송국 합격 필승 팁도 간략하게 들어 있다. 전종환 아나운서의 책에도 아나운서 시험 중 특히 면접 분야에서 유용한 팁을 접할 수 있는데, 이 책의 차별점 역시 바로 그 팁에 있다.
전종환은 아나운서 학원을 다니지 않았으며, MBC 최초로 재학 중 공채에 합격한 아나운서다. 잘난 척으로 시작할 수도 있지만, 그는 ‘그래서 입사 후 너무 힘들었다’고 솔직히 밝힌다. 학원에서 기본 발성과 발음을 배우고, 지방 방송국이나 케이블에서 경력을 쌓고 신입으로 입사하는 ‘경력 같은 신입’이 다수인 세상에 그는 진짜 초짜 신입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첫장 제목이 ‘이거 잘못 뽑은 것 같은데?’다. 그에게 방송 테스트를 시켜보던 선배가 한 말이다.
에세이집에는 아나운서이자 기자였던 그가 열정적으로 단독 보도를 따냈다거나, 유명인을 번뜩이는 지략과 끈기로 섭외해 시청률을 끌어올렸다… 는 식의 극적인 에피소드는 없다. 대신 동기들에 비해 덜 완성돼 “잘못 뽑았다”라는 소리를 듣던 그가 천천히, 꾸준히 노력해 제 몫을 해내는 방송인이 된 과정, 예능에 투입됐지만 낯가림이 심해 출연자들과 친해지기 어려워 이동 버스 안에서 자는 척했던 사례, 아나운서 7년차에 보도국으로 옮겨 수습기자 때 했던 실수, 단신 기사 작성이 어려워 후배에게 취재 내용을 불러주고 대신 쓰게 한 흑역사가 가득하다.
방송인의 과거 실수는 과장해서 재미있는 소재로 쓰일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지난 일을 미화하지 않고 오늘의 일기처럼 덤덤하게 기록한다. 군더더기 없고 슴슴한 문장이 이 책을 더 미덥게 한다. 우리는 매일 출근해 낯선 상황을 마주한다. 익숙한 일은 익숙해서 지겹고 새로운 일은 새로워서 힘들다. 그래도 매일 출근해서 부딪치고 배우고 패하면서 어제보다는 조금씩 나아진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의 총체가 모여 지금의 내가 된다. 매일 지는 것 같아도 거기서 얻는 것도 있는 평범하고 내성적인 어느 직장인의 10년 일기장을 훔쳐본다. 솔직하게 다 내보이는데도 글쓴이가 궁금해지는 에세이다.
시간에 공짜는 없다
짧은 시간 안에 눈에 띄게 실력이 늘었다 여겨져도 스스로를 계속 경계해야 한다. 자기 음색을 찾고 발성과 발음을 꾸준히 훈련해 자연스러워지기까지는 최소 몇 개월, 길게는 몇년의 시간이 필요하다.(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