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25번째 영화 <인트로덕션>은 담담한 마음으로 관람하다가 어퍼컷을 세게 얻어맞은 기분으로 극장을 나서게 되는 작품이다. 송경원 기자는 이번호 기획 기사에서 “시작의 지점 바로 앞, 문 앞에 선 존재들의 시간을 그러모은 영화”라는 감상을 덧붙였는데, 그의 표현처럼 무언가 시작되기 직전의 전조감으로 가득했던 영화는 마지막 장에 이르러 다가오는 것들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주인공 영호(신석호)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만나려던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선택하고 싶었던 직업을 택하지 못하고, 지키려던 사랑을 지키지 못한 그는 겨울 바다에 몸을 담근다. 감기 걸리겠다며 걱정하는 친구를 뒤로하고 조금만 바닷속에서 버텨보겠다던 청년은 파도에 휩쓸리고 물을 먹고 추위를 이기지 못해 다시 뭍으로 나온다. 이 단순하면서도 힘 있는 움직임이 <인트로덕션>의 마법 같은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낸다.

시린 겨울 바다의 촉감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짐작하는 것은 결코 같지 않다. 그것이 무엇이든 일단 받아들이고 휩쓸려보고 체감해보는 행위,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믿고 지지해주는 누군가의 담담하지만 따뜻한 포옹. 예측 불가능한 세계 속에서 짧은 순간 타인과 나누는 일말의 온기만으로도 충만한 홍상수 감독의 <인트로덕션>은 내게 온기와 촉감의 영화로 기억될 듯하다.

이번호 특집은 지난 1년간 급변한 한국 영화산업의 현재를 짚어보는 심층 리포트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것들이 변할 거라는 예상은 누구나 했겠지만 막상 점검해보고 나니 ‘뉴 패러다임’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산업 전반의 구조와 형태가 달라졌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천만 관객이 사라진 극장가로 인한 새로운 수익 배분 공식과 신흥 강자로 떠오른 OTT가 야기한 변화들, 독립·단편 영화제의 축소와 더불어 달라진 신진 창작자의 등용문 등 김성훈, 임수연, 김소미, 남선우 기자가 다각도로 취재한 특집 기사를 읽으며 다시 한번 <인트로덕션>의 겨울 바다를 떠올려보았다. 예상보다 더욱 거센 파도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