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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로건과 로라
강화길(소설가) 2021-05-10

<로건>

겨울 내내, 집에 햇빛이 들지 않았다. 1층인데다 지대도 낮아서였다. 햇빛은 매일 아침 베란다 문턱 언저리에 살포시 머물렀다가, 금세 사라져버리곤 했다. 나는 그게 참 불만스러웠다. 이 집에 살면서 식물을 키우거나(키울 생각도 없었으면서), 햇빛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는 일(딱히 그런 무드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을 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약간 분이 났다. 하지만 집이 이렇게 생긴 걸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적응하는 수밖에.

그런데 며칠 전 아침, 작업을 하다 무심코 창가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커튼 사이로 빛이 스며들어 있는 걸 보았다. 평소 같으면 절대 그 자리에 빛이 들지 않기에 나는 조금 놀랐고,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그러자 햇빛이 내 얼굴을 환하게 비추면서 책상 부근까지 길게 들어왔다. 나는 잠시 놀라 그대로 서 있었다. 문을 활짝 열었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동시에 보송보송했다. 더이상 매섭게 건조하지 않았다. 계절이 변한 것이다.

<로건>을 봤던 날도 이와 비슷했다. 봄이었고, 생일이었다. 나는 레이스가 나풀거리는 푸른색 블라우스를 입고서 꽤 좋은 극장에 갔다. 생일을 맞이하여 울버린의 마지막을 제대로 지켜보고 싶었달까. 확실히 감상적인 선택이었다. 날씨에 휘둘렸던 탓이다. 따뜻해졌고, 꽃 냄새가 났고, 그래서 무언가 마음을 충만하게 해주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나는 울버린을 좋아한 적이 없었다. 그를 처음 봤을 때가 언제였더라. 중학생 때쯤이었던 것 같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핍박을 받다가 세상을 구한다는 엑스맨 이야기는 원래도 매력적이지만, 그 나이의 나에게는 더더욱 심금을 울리며 다가왔다. 나는 그 돌연변이들을 질투했다. 아주 평범한 사람답게 말이다. 그들은 학대와 차별의 대상이지만, 그만큼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이들이었다. 심지어 자신들을 경멸하는 보통 사람들을 구해낼 만큼 그릇이 크기도 했다. 그 시절 나는 자비에 학교에 입학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평범했고, 아니, 과연 앞으로 평범해질 수나 있을지 전혀 자신을 갖지 못하던 어린애였으니까.

그래서 울버린을 좋아할 수 없었다. 그는 엄청나게 특별한 사람이었지만, 그런 자신을 알아봐준 친구들을 훌쩍 떠나버린다. 그들에게 상처를 준다. 어른이 된 지금은 그를 조금 이해한다. 그렇게 느낀다. 살면서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 이해받는다는 것, 그래서 온전한 하나가 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설사 서로 깊이 사랑한다 해도 그건 정말 어렵다.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그 오해의 폭을 좁히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울버린은 그 모든 것을 진작 깨달은 사람이다. 자신에게 사랑보다 분노와 절망이 더 어울린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내치는 방식을 선택한다. 고독하다. 외로운 삶이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미쳐버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울버린은 미치지 않았고, 대신 미치기 일보 직전 상태에서 온 힘을 다해 산다. 그래서 그가 히어로인 거겠지. 그런데, 그랬던 그가 이제 세상을 떠나버리겠다니! 정말로 떠나버리다니.

영화가 끝난 후, 나는 극장에 들어갔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감상적으로 변해 있었다. 아니,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나는 울버린의 삶, 행적, 마지막 선택, 그 모든 것에 감동을 받았다. 충만함을 넘어서는 감정이었다. 로건이 죽었다. 찰스 자비에도 죽었다. 돌연변이 모두가 죽었다. 엑스맨들의 세상이 끝나버렸다. 그리고 나는 서른이 훌쩍 넘어 있었다. 나의 한 시절이 끝나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절이 바뀌듯이 어느 순간 스르륵, 하고 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 지난 시절은 어떠했던가. 영화를 보기 위해 용돈을 아꼈고, 콜라만 사서 극장에 들어갔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컴퓨터 앞에 혼자 앉아 과자를 먹으며 영화를 봤다. 가난했고, 여전히 특별해지고 싶었으며, 내가 평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고민들이 끊겼다. 내가 나아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고민들이 사치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현실에 내던져졌다. 그제야 울버린이 왜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싸우는지 이해했다. 싸우는 순간에는 덜 고독하기 때문이다. 나의 삶, 운명, 미래, 그리고 현재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나도 생각하지 않는 걸 원했다. 울버린처럼 악착같이 싸우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투쟁적으로 살았던 것 같다. 학교에 다니고, 과제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소설을 쓰고, 무명 시절을 견디며 책을 읽고, 내가 믿는 것들을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믿고, 좋아하고 사랑하고. 그래서인지 <로건>이 개봉하기 전까지 몇년간, 나는 어린 시절과 같은 마음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모든 것이 일이었고 과제였으며 공부해야 하는 텍스트였다. 그건 그 나름대로 쾌락을 가져다주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결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러니까 나의 한 시절이 끝나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로건>을 보고 또 그 생각을 했다. 아, 또 바뀌었구나. 이 시절이 또 끝나가는구나. 그건 뭔가 나아졌다거나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내게 다음 계절이 다가왔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을 뿐이다. 봄이 끝나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서 가을이 오듯, 내 안에서 어떤 것들이 변화하고 달라지고, 그래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일들 중 하나가 또다시 벌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 지치고 노쇠한 히어로에게 꽤나 감정이입을 했다.

인정투쟁을 하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고, 그렇다고 내가 하는 것이 인정투쟁이 아니라고 할 만한 자신도 없었고, 허세를 부리기는 싫고, 그렇다고 허세가 아닌 것도 아니고, 그저 내 일을 똑바로 잘하고 싶었을 뿐이지만 그마저도 잘되지 않았는데, 다음 단계가 와버렸다. 무언가를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그러나 삶은 계속된다. 그래야 한다. 때문에 이 영화는 그 고독한 영웅의 죽음만을 다루지 않는다. 내가 이 영화를 생일에 봤다는 이야기를 했던가? 탄생과 죽음. 엑스맨의 이야기에는 늘 이 주제가 드리워져 있었다.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늘 그 이야기를 전하던 찰스 자비에는 마지막으로 가장 자신다운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로건 역시 자신다운 죽음을 선택한다. 그리하여 로건은 로라가 된다. 로라는 새로운 봄을 연다. 빛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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