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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감독, 관객을 만나다 [2] - 김지운 ①

백수 고수 김지운, 센시티브했던 유년기를 털어놓다

“살면서 `이게 뭘까`하는 느낌을 잊지 마세요”

안녕하세요. 김지운이에요. 들어오다 잠깐 들었는데 ‘야, 진짜 선글라스 썼네’ 그러시네요. 사실 제가 낯을 많이 가리고…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서요… 선글라스… 양해부탁드립니다. 먼저 절 모르시는 분들도 많을 테니 제 소개부터 하죠. 저는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서울 토박이고 할아버님 본적이 중구 삼각동이에요. 그 동네가 일제시대부터 양복점인지, 포목점이 많은 동네라 할아버님도 그런 일을 하셨나봐요. 저는 태어나기는 홍제동에서 났어요, 잠깐만 옷 좀 벗을게요. (윗옷을 벗자 ‘우우∼’ 하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김지운 감독, 당황하며) 이런, 다 벗는 건 아니에요. (웃음) 어제 류승완 감독이 땀이 많이 날 거라고 하던데 정말 땀이 많이 나네요….

#1 유년기

어떻게 영화감독이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아마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이 많이 작용했던 것 같아요. 저는 3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동네 친구들한테 돈 받고 팔기도 하고, 가끔은 그냥 주기도 하고.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는 제가 식음을 전폐하고 밤낮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거예요.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죠, 애가 밥도 안 먹고 그림만 그리니까. 하루는 식구들이 불을 다 껐어요. 그래도 제가 울면서 달밤에 그림을 그렸다, 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가 있죠. (웃음) 그리고 아버님이 차마 절 때리지는 못하시니까 그 그림을 다 찢었어요. 울면서 찢겨진 그림을 이어붙였죠. 아마 그때부터 편집 감각을 키웠던 것 같아요. (웃음)

그러다 큰 사고가 있었어요. TV 수사드라마에서 어떤 사람이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걸 보다가 제가 쇼크를 받아서 기절을 한 거예요. 병원에서, 이 아이는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른 아이들보다 예민한 것 같다고 했대요. 그뒤 다량의 약을 먹었는데 어머니에게 무슨 약이냐고 물어보면 ‘용가리 통뼈약’이라고 하셨어요. 사실 무슨 영양제였을는지도 모르지만 저는 지금도 그 약이 나의 감각이나 감성을 죽이는 신경안정제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그러다보니 저는 제 자신의 유년기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어요. 유년기에는 지금보다 대상에 대해 더욱 열정적이었고 센시티브하지 않았나, 하는 것 말이죠. 그래서 어린 시절 있었던 일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고 유년에 대한 집착이 강해요.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면 타르코프스키가 <봉인된 시간>이란 책에서 ‘영화란 것은 기본적으로 노스탤지어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봉인된 시간’, 시간을 공간화시킨다는 개념에서 이 말은 영화라는 매체의 속성을 잘 설명한 것 같아요. 제가 지냈왔던 유년에 대한 향수, 만화를 그렸던 감수성, 가상의 세계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상증세, (웃음)집이 기울어져서 자주 이사를 다니면서 바뀌는 환경에 친구가 없어 늘 혼자 지냈던 기억, 혼자 지내는 사람의 특성 중 하나는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낯선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민감한 것이잖아요, 그런 모든 것들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2 백수 시절

중고등학교 때는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서클에 들라고 했어요. 폭력서클이었는데(관객웃음) 그곳에서 폭력을 행사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죠. 그리고 군대를 갔고. 이후 군대를 포함 10년 가까이 백수 생활을 했어요. 사실 저는 제가 끝까지 백수로 살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물론 돈이 없어서 불편하긴 했지만. 그러니까 서른세살까지 백수 생활을 했죠. 사실 그게 1∼2개월이 제일 힘들죠, 2년 정도 지나면 리듬이 생겨요. 백수 리듬을 타게 되면 사람이 참 부드러워지고 유연해지죠. 성취욕 그런 게 없으니까 뭐 특별히 급할 것도 화낼 것도 없어요. 일생에서 직업적으로 제일 길 게 한 것이 백수인데 아마 감독이란 직업도 영화 안 찍을 때는 도로 백수일 수 있어서 선택한 것 같아요. 지금 여기 오신 분들 중에서도 그런 직업군에 속한 분들이 계실 텐데(웃음) 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건 나중에 돈으로 사려고 해도 살 수 없는 시간이거든요.

저는 시나리오를 빨리 쓰는 편이거든요. 이렇게 시나리오를 빨리 쓸 수 있는 건 아마도 다년간 쌓아온 ‘백수 공력’이 아닌가 싶어요. 백수 때 많이 보고 잘 놀고 10년간 받아들이기만 하고 한번도 쏟지 않았던 창착욕구, 한번에 다 쏟아져 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이런 유년기와 백수기가 저에겐 감독이 될 수 있는 정신적인 자양분이었던 것 같아요.

기술은 미학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자 | 관객이 질문을 준비하실 동안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뛰어난 예술가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는데 대부분 상태가 안 좋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거죠. (웃음) 폐인이 될 만한 충분한 요건이 있었던 사람이 감독이 되어서 참 다행입니다. 자기 속의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가 폐인도 만들고 예술가도 만드는데, 감독님에겐 그 에너지를 생산적인 쪽으로 전환시킨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김지운 | 글쎄요. 폐인이 되고 안 되고는 좀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웃음) 얼마 전 완성한 <메모리즈>는 3개국 감독의 작품을 모은 건데, 홍콩편은 진가신 감독이 찍었어요. 이 작품 촬영은 왕가위와 오랜 작업을 했던 크리스토퍼 도일이 맡았는데 이 사람, 정상이 아니에요. 하루에 2, 3시간밖에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만날 맥주만 먹어요. 그냥 길거리에서 보면 정신병자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런데 이 사람이 하는 건 예술이거든요. 카메라의 무빙이나 색감, 톤, 앵글이 장난이 아니에요. 시나리오를 쓰다가 가끔 졸려서 자야지 그러거나, 담배 그만 피워야지 하는 순간엔 도일을 떠올려요. 엄살을 피울 필요가 뭐가 있을까 그냥 빨리 죽자 하는 생각, 앗 그러고보니 답이 딴 데로 샜군요. 아마도 10년 백수 생활 동안 좋은 영화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관객 | 저도 시나리오를 쓰는데 다 썼다고 덮고 나서도 이게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전혀 감이 안 오거든요. 아까 시나리오를 빨리 쓴다고 하셨는데 감독님은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확신이 바로 드시나요? 또 첫 번째 시나리오인 <조용한 가족>은 교통사고 내고 돈이 급해서 썼다고 들었는대요.

김지운 | 교통사고는 제가 낸 게 아니라, 차가 낸 거죠. (웃음) 워낙 상태가 안 좋은 차였는데 그날 말을 안 듣더라구요. 사실 처음 시나리오를 쓴 건 <조용한 가족>이 아니라, 프리미어에서 당선된 <좋은 시절>이라는 시나리오였어요. 2년 정도 여자친구와 사귀면서 그동안 몸에 익어온 백수 리듬이 많이 흐뜨러졌는데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나니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할 일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이 시간에 뭐하나 하다가 시나리오를 써보자 하고 썼던 게 <좋은 시절>이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영화를 할 때는 조금이라도 현실을 잊을 수가 있어서 좋은 거거든요. 자연스럽게 실연의 아픔을 느낄 틈도 없이 시나리오에 몰입했어요. 그러던 차에 교통사고가 났고 목돈이 필요했어요. 별로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살았는데 돈이라는 게 자기 앞가림을 하기 위해선 필요한 거더라구요. 처음 쓴 시나리오가 우연히 공모에 당선되고 뭐 다른 시나리오 공모가 없나 찾던 차에 식당에 아줌마가 라면을 쟁반 대신 <씨네21>에 받쳐서 가져오시더라구요. (웃음) 거기에 ‘시나리오 마감 일주일 전’이라고 써 있었는데 그걸 보고 <조용한 가족>을 쓰게 되었죠. 어쨌든 전 시나리오를 즐겁게 쓰는 편이에요. 고통스럽게 쓴다고, 쥐어짠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고민해서 안 나오는 건 나한테 없는 거라 생각해요. 시나리오를 빨리 쓰는 건 완성의 의미가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찍겠다는 것을 빨리 알리는 의미인 거죠. 진짜 시나리오는 현장에서 오케이 사인이 나오는 순간까지 다시 쓰여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늘 모든 영화의 신들은 현장의 다변적인 요소들과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니까요.

관객 | 저는 극작과 학생입니다. 시나리오를 쓰실 때 어떻게 소재를 찾나요? 그리고 정신병자와 예술가의 차이는 결국는 정상인으로 돌아나올 길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어떻게 기나긴 백수 생활을 접고 감독이란 통로를 찾으셨는지 궁금하네요.

김지운 | 눈을 뜨고 눈을 감을 때까지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을 작품의 원천으로 삼는 편이에요. 특히 그림이나 사진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받아요.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서 그 사진의 앞 혹은 뒤의 상황들, 그곳에 감춰진 이면을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죠. 나의 인격이란 것이 그렇게 되어 있나봐요. 감독이 된 동기는 앞에서 자세히 말씀드린 것 같고, 워낙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하긴 했어요.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것과 영화를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것 같아요. 정말 차원이 다르죠. <매트릭스>에서 피시번이 ‘케이크를 보는 것과 맛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명대사를 하는데 정말 그래요. 감독이 되기 전 캠코더 한번 들어본 적이 없는 저는 미학이 기술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기술은 미학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감독은 또다른 세상을 그리는 판타지만 품고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예술이란게 판타지를 세상에 어떤 현실물로 구체화하는 전과정이라면 좋은 판타지만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기술이 도와준다 이렇게 생각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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