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장영엽 편집장] 오스카의 밤이 남긴 것
장영엽 2021-04-30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난 1년 새 한국인의 영화 축제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봉준호 감독이 샤론 최 통역사와 함께 감독상의 시상자로 나서고,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가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2021년 오스카는 한국영화계의 저력을 다시 한번 글로벌 무대에 선보이는 자리였다. 새로운 역사가 쓰여진 만큼 지난해부터 SNS로 실시간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를 시작한 <씨네21> 취재팀의 하루도 덩달아 숨가쁘게 흘러갔다.

특히 올해는 김성훈, 송경원, 임수연, 김소미, 남선우 기자가 트위터의 새로운 음성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인 ‘트위터 스페이스’(#TwitterSpaces)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을 해설했다. <씨네21>을 통해 스페이스 기능을 처음 접한다는 소감부터 세 시간 반 동안 단 한 차례의 휴식도 없이 매끄러운 진행을 선보인 기자들이 놀랍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반응을 접할 수 있었다. 주간지의 긴 호흡에서 벗어나 실시간으로 청취자들과 교감할 수 있어 우리 역시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실시간 트위터 중계를 맡았던 나와 배동미 기자의 노트북 자판이(둘 다 ‘K’자가 빠진 것은 우연일까) 사이좋게 하나씩 빠졌다는 후기도 전한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윤여정 배우의 오스카 수상뿐만 아니라, 2016년의 #OscarsSoWhite 논란 이후 지난 5년간 점진적으로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장해온 아카데미가 얼마나 진보해왔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화 축제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5년 전 배우 부문 후보로 오른 20명 중 백인이 아닌 이가 단 한명도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20명 중 9명의 유색인종 출신 배우 부문 후보를 배출한 올해 시상식의 변화는 놀랍다. 백인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게 그렇게 중요하냐고 묻는 이도 있을지 모르지만, 전세계 상업영화계의 좌표를 그리는 영화 축제에서 목소리를 낼 기회를 부여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예상보다도 훨씬 더 큰 파급력을 지닌다. 봉준호 감독, 윤여정 배우, 스티븐 연과 같은 아시아계 영화인들이 주목받을수록 글로벌 무대에서 아시아계 창작자들의 입지도 덩달아 높아진다는 얘기다.

코로나19 때문에 단 한 사람만 동행할 수 있는 조건에서 배우 윤여정은 <미나리>에서 딸로 출연한 한예리와 시상식에 함께 참석하기를 택했다. 한예리에 따르면 윤여정은 “견학을 했으니 다음에 좋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윤여정보다 수십년 앞서 글로벌 영화 산업의 최전선을 체험한 한예리, 그리고 언젠가 자신도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수많은 아시아계 배우들이 생겨났다는 것이야말로 올해 아카데미의 밤이 선사한 가장 아름다운 유산일 것이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