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 창과 방패가 결합해 만들어지는 아이러니
-<복수는 나의 것>이 하드보일드로 가다 마지막에 관객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인지, 감독님의 의도인지 모르지만 코믹하게 나간다는 판단이 많은데요. 그것에 대해 해명을 해주세요. 그리고 충무로 연출부 생활을 했던 사람으로서 영화감독이 되려고 하는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복수는 나의 것>은 하드보일드와 코믹이 불가분의 관계로 처음부터 끝까지 섞여서 가기를 원했어요. 오히려 하드보일드한 느낌은 뒤로 갈수록 강해진다고 보구요. 의도적으로 점점 코믹하게 가려고 했었고. 송강호의 죽음에 대해서도. 송강호가 그런 식으로 죽는 것이 굉장히 우스꽝스럽다고 실망한 관객도 있겠지만, 나는 주인공의 죽음이 우스꽝스러운 것이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우스꽝스러울수록 비참한 기분이 더 들기 때문에. 두 번째 질문, 영화감독이 되려는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사람이 1만명이 있다면 그걸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100명, 그중 성공하는 사람은 10명, 그중에서 성공했으면서 가정적인 사람은 1명? (웃음) 성공이 뭔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는데….
-감독님은 가정적인가요?
=오늘도 대판 싸우고 나왔어요. (웃음) 성공이란 것도, <공동경비구역 JSA> 만든 감독이다, 그래서 성공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것 하나로 끝날 수도 있어요. 내 나이 서른 몇인데, 이후 40년을(웃음) 계속 힘들게 지낸다면 그게 성공한 인생이랄 수 있나요. 그렇게 계속해서 성공하는 감독은 찾아보기 힘들고, 특히 한국에서는 50살만 넘어도 거의 퇴출 분위기니까. 여러 가지 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직업이니까 말리고 싶어요. 그래도 해야 한다면 뻔하죠. 좋은 각본을 만드는 것. 한국은 전문적인 각본가가 별로 없었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뛰어난 각본가는 다 감독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에요. (웃음) 데뷔를 하려면 자기가 좋은 각본을 갖고 있어야 해요. 연출부를 100년 해도 소용없어요. 결국 마지막 순간에 좋은 각본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아무도 데뷔시켜주지 않아요. 또, 단편영화를 썩 잘 만들어서 픽업되는 것도 좋죠. 그런데 좋은 단편영화를 만드는 데도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혼자서 쓰는 게 좀 싸죠. (웃음)
-감독님께서 주성치를 좋아하셔서 어떤 영화에 주성치를 오마주했다는데….
=<공동경비구역 JSA>예요. 이병헌이 김태우를 데리고 월북하는 장면에서 다리를 건너가잖아요. 거기서 김태우가 “다음에 가자”고 하니까 이병헌이 “통일의 물꼬를 트러 가는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트면 안 될까요?” (웃음) 그 장면은 에서 정부 첩보기관의 높은 사람이 주성치의 임무에 대해서 한참 동안 설명하고 엄청난 자료를 준 다음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없나?” 하니까 “안 가면 안 될까요?”(웃음) 너무 웃겨서 그걸 썼어요.
-많은 분들이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해 질문을 하시는데 영화 자체가 <공동경비구역 JSA>보다 신선하다고 느껴서 그러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 가지 정도 질문을 드리겠는데요. 감독님이 잡지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코미디다”라고 말했는데 조금 전에 그로테스크한 것, 하드보일드한 것, 우스꽝스러운 것 등이 섞여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요소들을 어떤 방식으로 배치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둘째는 시청각을 많이 배제시켜 찍으셨다고 했는데 오히려 고도로 계산되어 있지 않나 하는 겁니다. 카메라 각도라든가, 류가 일하는 공장에서 기계소리만 지나치게 크게 들린다든가 하는 부분에서요. 마지막으로 동진이 유선 시체를 해부할 땐 울먹이다 누나 시체 해부할 땐 하품을 하잖아요. 인간 본성이 파괴되는 것 같아 충격적이었어요. 감독님 작품들에서는 나중에 주인공이 죽잖아요. 사람 사는 것에 대해 염세적으로 보고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
=우스꽝스러운 것이 어떤 식으로 결합되어 있느냐 했는데, 코미디라고 한 것은 영화의 잔인성, 폭력성이 너무나 두드러지게 소문이 나서 전략적으로 얘기한 거예요. (웃음) 그러다간 손님 하나도 안 올 것 같아서. 그래도 손님 안 오긴 마찬가지였지만. (웃음) 코믹한 부분들이 있지만, 한마디로 코미디라고 말할 순 없죠. 그로테스크는 그 안에 이미 유머를 갖고 있어요. 유머가 없는 그로테스크는 엽기취미일 뿐이고, 유머 빼고 잔인하거나 끔찍하기만 한 묘사는 재미도 없고. 사람마다 언어의 뉘앙스가 다르겠지만 내가 말하는 그로테스크는 모순된 것이 결합돼서, 모와 순, 창과 방패가 결합해 만들어지는 아이러니예요. 그것이 영화의 핵심적 방침이었고. 그런 것이 부조화하기 때문에, 부조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참기 어려울 것이고, 그런 부조화가 인간실존의 부조리한 것까지 생각하게 하는 관객한테는 즐거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두 번째 질문, 처음엔 미니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과는 미니멀한 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 물론 배우가 많이 표현하지 않는 것, 컷 수, 음악 등은 미니멀하지만 결과는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아주 엄격한 고전적인 비극의 느낌이 잡혔으면 했어요. <버라이어티>의 데릭 엘리라는 평론가가 이 영화를 “아시아에서 온 희랍비극이다”라는 평을 썼는데 칭찬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 말이 마음에 들어요. 잔인한 묘사가 많다고 하지만 희랍비극이나 <일리어드> <오디세이>에 묘사된 전쟁, 폭력의 장면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잘 아시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 스토리구요. 아주 엄격한 구도와 그런 분위기가 담긴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 숨막힐 듯한 엄격함 속에 썰렁한 개그가 틈틈이 끼어드는. 세 번째 질문인 세계관은, 낙천적이진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생활에서는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자꾸 이런 영화만 만드는 것은 해피엔딩을 만드는 것을 제가 거부했기 때문이에요. (웃음) 앞으로는 일부러라도 그런 영화를 만들려고 합니다.
나의 원동력은 분노
-개인적으로 여덟개의 질문을 준비했는데(웃음) 지금 분위기가 너무 <복수는 나의 것>쪽으로 가면서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가벼운 질문을 하겠습니다. 엊그저께 류승완 감독님은 따님에게 절대 영화일 안 시킬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감독님도 부모님 영향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듯이 감독님이 거실에서 DVD로 스플래터, 호러무비 등을 보면 영향을 받을 텐데 그런 영화에서 따님을 어떻게 보호하실 건지요.
=그런 영화는 애 있을 땐 안 보죠. <슈렉> 같은 것 보죠. (웃음) 영화감독은 멋진 직업일 수도 있지만 그저그런 감독이라면 그것처럼 비참한 직업이 없어요. 딸애가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인데, 제가 하는 일보다 더 보람있고 재미있는 일도 많은데 그런 일 시키고 싶죠. 지금 하고 싶어하는 일은 동물보호 액티비스트. (웃음)
-감독님께서 아까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좋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어떻게 하셨는지, 또 감독님이 생각하기에 좋은 시나리오란 어떤 건지요. 그리고 좋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요. 마지막으로 <공동경비구역 JSA>를 굉장히 감명깊게 봤는데 감독님은 군생활을 어떻게 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군생활은 그저, 방위. (웃음) 그때는 6개월 방위가 많았는데 18개월로 늘어난 첫 번째 기수였어요. 그것도 육군본부 도서관 방위. 내가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한 시절이었어요. 아마 대한민국 군인 중에서 제일 편한 생활을 했을 거예요. 좋은 각본은 어떤 것이냐. 일단 재주부리지 않고 진심으로 쓰는 것은 표가 난다고 생각해요.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사실이에요. 스스로 절실해서 안 쓰면 못 참겠어서 쓰는 스토리가 진짜라고 생각하고. 좀더 기술적인 얘기를 하자면 지문을 아주 간단하게 쓸 필요가 있어요. 인물과 꼭 필요하다면 장소의 풍경 정도. 대사도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줄여보는 게 좋아요. 이 말을 안 하면 얘기가 안 통한다거나 성격 전달이 안 된다거나 하는 경우 빼놓고는 다 없애버리는 게 큰 도움이 되고. 그렇게 아주 콤팩트한, 가벼운, 얇은 시나리오를 쓰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기술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고. 갈등과 이야기 전개면에서는 셰익스피어가, 인물의 성격 창조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발자크가 교과서 같은 작가죠. 시나리오 작법 책은 한권도 안 봤어요.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 사회적인 분노나 메시지 같은 것이 보이는데요, 분노가 혹시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은 아닌지요?
=원래 매사에 투덜이, 불평분자예요. 세상에 잘 돌아가는 부분도 있고, 좋은 사람도 많지만 안 되는 것, 나쁜 쪽에 더 관심이 가고. 나쁜 짓을 하고도 멀쩡히 잘사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가 그런 것에 관심이 가고. 그게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만 갖고 영화를 만들 순 없잖아요. 그것만 갖고 하다보면 나도 지치고. 세상과 인간을 좀 다른 모습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지만, 아직까지는 분노가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해요. 나이가 더 들어서 원숙한 통찰력이 필요할 때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