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은 자기가 가던 길을 그냥 가지 않고 굳이 사람들 품을 파고든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쓴 소설가이자 강화도에서 공동체를 운영하는 지역운동가인 김중미 작가의 신작은 가난에 대한 이야기이자 10대에 대한 이야기다. 일제강점기에 공장이 있었고 그 시절 조선인이 모여 살던 줄사택이 아직도 남아 있는 동네 ‘은강’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배경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에는 가난한 ‘난장이’ 가족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이곳을 어떻게든 바꾸어 수익을 내고 명성을 얻고자 하는 집요한 흐름이 있다. 브랜드 아파트 단지를 지어서 땅값을 올리는 표준적인 한국식 개발 입장이 있는가 하면, 도시 재생 등의 이름으로 북카페나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고 사진 명소나 ‘쪽방체험관’ 같은 여행 코스를 만들자는 입장도 있다. 어느 쪽이든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에겐 달갑지 않은 이야기다.
은강에 사는 10대 이야기는 미래를 향한다. 지우는 안다. 동네에 서민 가정의 자녀만 다니는 변두리 학교만 남았다는 것을. 엄마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싶어 적금을 투자했다 사기를 당하고 대학생 언니는 영화감독의 꿈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만 그래도 지우는 은강에서 풍파를 겪으며 살았던 할머니 세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은 꿈이 있다. 지우의 친구 여울은 ‘가난이 고이는’ 변두리 은강을 떠나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교대 진학을 목표로 학업에 매진한다.
휴먼시아 아파트에 산다는 것마저도 차별을 당할 만큼 부와 가난의 척도를 촘촘하게 재는 우리 사회를 잘 알고 있기에 여울은 탈출에 필사적이지만 친구들과의 우정까지 다 저버리진 못한다. 은강의 10대들은 ‘쪽방체험관’을 만들어 가난을 전시하겠다는 구청의 계획에 맞서 서명을 받고 언론사와 인터뷰도 해 동네의 존엄을 지키는 데 성공한다. 요즘 사흘이 멀다 하고 뉴스 제목으로 보도되는 아파트 집값의 규모란 그야말로 거대하고, 재개발과 재건축을 기다리는 열기도 뜨겁기 그지없다. <곁에 있다는 것>은 이런 부동산 뉴스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치열하게 전하면서 봄바람 같은 따뜻함을 품고 있는 책이다.
개발의 이면
“공영 재개발은 도시 빈민 지역을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바꿀 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생태계를 완전히 짓밟는 거라고.”(2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