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빠지셨네요!”
너무 놀라서 대답을 못했다. 저 말을 듣고 멍한 얼굴로 약 1초 동안 내 주변의 인간관계와 내가 사람을 만나는 횟수와 용건을 돌아보며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페미니즘 친화적인 출판계 인사를 주로 만나며 그 밖의 경우에도 저런 말을 할 일이 없는 공적인 자리에 주로 나가는지를 주마등처럼 떠올렸고, 저 말을 첫인사로 건넨 상대방은 내가 대답을 못하자 호탕하게 웃었다. 물론 상대방이 무슨 나쁜 의도가 있어서 그랬던 것은 전혀 아니다. 나와 나이가 같은 여성이며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나의 친구는 기분 좋은 첫인사를 했을 뿐이고, 나는 그런 ‘평범한 감성’으로부터 내가 얼마나 많이 도망쳐왔는지를 실감했다.
최근 몇년간 내 몸을 외양이 아닌 기능을 중심으로 보는 법을 배웠다. 가느다란 다리와 납작한 배와 큰 눈이 아니라 튼튼한 다리와 단단한 코어와 앞을 잘 보는 눈이 삶에서 더 소중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단박에 후자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니고 여전히 일하느라 골골대는 프리랜서지만, 혹독한 외모 강박에서 벗어나 바라보는 세상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 시기가 20대를 마무리하는 시기라 더 좋았다. 성애적 대상, 판단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주체로서의 나. 변하지 않는 나의 가치와 존엄을 삶의 중심으로 삼는 나.
가장 좋았던 것은 다른 여성을 보는 나의 눈이 변화한 것이었다. 30년 가까이 사회의 평가를 내면화한 젊은 여성답게 나 자신에 대한 평가보다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멈추는 게 훨씬 쉬웠는데, 외모에 대한 판단을 완전히 걷어내고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사람을 사람 자체로 보는 경험. 얼굴 생김새보다 생각, 가치관, 의견, 관심사에 집중하는 경험.
이 충만한 경험은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이가 자기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데에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나 역시 다른 여성들로부터 이런 도움을 받았다. 아무런 평가도 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에는 냅이 거식증에 걸리게 된 과정이 나온다. “내가 살이 빠진 걸 남들이 알아본 것도 기억난다. 여자친구들은 ‘우와! 너 엄청 날씬해졌네!’ ‘어떻게 한 거야?’ 하고 말했다. 내 생각에는 그 일이 내 마음속에 씨앗을 심은 셈이었다. 엄청 날씬해지면 돋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161p) 나는 우리가 이런 말로 서로를 가짜 자존감 중독으로 밀어넣지 않기를 바란다. 삶은 너무 짧고,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묻고 감정을 나누는 데만 해도 시간은 한없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