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미야노 마키코와 인류학자 이소노 마호의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은 두 사람의 편지를 묶은 서간집이다. 2019년 4월부터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았고, 7월 6일까지 썼는데, 미야노 마키코는 7월 22일 책 출간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암 투병 중에 사망한 저자의 이 책에는 절박한 사유만이 보여주는 경지가 담겨 있지만, 의사로부터 이런저런 경고를 들으면서도 ‘평균수명’이라는 감각으로 사는 사람이 죽음을 앞둔 사람의 글을 읽고 슬픔, 감동, 교훈을 얻는 일은 일견 경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편지글을 읽다보면 이소노 마호는 계속해서 질문하고, 답장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심지어 그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수업이 앞으로 좋아지리라는 감사의 말을 적었지만, 미야노 마키코는 그렇지 않다. 이소노 마호가 무례하다는 뜻이 아니라(책 후반부로 갈수록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편지를 주고받고 책을 마무리한 데 대해 독자로서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사려깊으려 해도 상상으로 죽음 앞에 선다는 일이 불가능해서다. 이소노 마호는 편지에 적었다. “암을 대하는 저의 감각은 ‘미야노를 알기 전’과 ‘미야노를 알게 된 후’가 판이하게 다릅니다.” 나 역시 그렇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책 중반을 넘겨서, 미야노 마키코의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사실이 이소노 마호의 편지를 통해 드러난다. 6월 2일자 편지에서 이소노 마호는 두 사람 사이에 ‘인사말’이라는 게 쓰이지 않음을 지적한다. “빨리 낫길 바라요” 같은 말 말이다. 이 화두는 직전 미야노 마키코의 편지에서 이어진 것인데, “정돈되어서 놀이라고는 끼어들 틈이 없는 말들. 분명히 대화인데, 점점 글말과 가까워지는 것이 바로 병에 대한 대화입니다”.
6월 2일이 되어, 이소노 마호는 묻는다. “오직 너만 자아낼 수 있는 말을 글로 남겨. 그 글이 세계에 어떻게 닿을지 지켜보기 전까지, 절대로 죽지 마.” 더이상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어 제목은 편지의 내용과 인간의 운명을 요약한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이며, 일본어 제목은 편지 교환의 운명을 결정지은 말이기도 한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이다. 책을 읽으며, 죽기 전까지 인간은 살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생각했다. 미야노 마키코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