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에 이어 또 한권의 흥미진진한 조애나 러스의 논픽션이 출간되었다. 근대 고딕소설에 대한 <누군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남편인 것 같다>와 더불어 조애나 러스의 문학 비평 3부작이라고 불러도 좋을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은 총 11가지의, 주류 예술계가 자신들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창작자들의 작품을 억압하는 언어들이 소개된다. 금지하기, 자기기만, 행위 주체성 부정하기, 행위 주체성 오염시키기, 이중 기준으로 평가하기, 잘못된 범주화, 고립시키기, 예외로 취급하기, 본보기 없애기, 회피하게 만들기, 미학적이지 않다고 보기.
‘금지하기’. 교육, 창작, 출판을 둘러싼 공식적인 금지가 사라진다고 비공식적인 금지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빈곤과 여가 시간 부족은 예술 활동을 방해하는 강력한 원인이다. 18세기와 19세기의 많은 여성 작가들은 자기 재산을 갖기 어려운 제도하에 있었고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가사와 돌봄 노동을 위해 많은 시간을 써야 했다. 20세기 들어서는 이제 일과 가사, 돌봄 모두가 여자 몫이 되었다. 조애나 러스는 여성 작가들과 관련된 문헌을 통해 이런 주장 하나하나를 뒷받침한다.
조애나 러스의 통찰은 정확할수록 기막히다. ‘보편’의 인간에서 여성이 제외되어온 역사는 어이없도록 촘촘하다. ‘행위 주체성 부정하기’는 특히 그렇다. 여자가 뭔가를 써버렸다면? 여자가 썼을 리가 없다고 주장해버린다! <제인 에어>의 샬럿 브론테는 아예 남자 이름으로 소설을 먼저 발표했고, <프랑켄슈타인>의 저자는 메리 셸리가 아니라 그 남편인 퍼시 비시 셸리로 추정되곤 했다.
오늘날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이중 기준으로 평가하기’다. 조애나 러스의 문장을 빌리면 “그녀가 썼지만 뭘 썼는지 한번 봐라”인데, 다른 말로 “그녀가 썼으나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구성이 엉망이다/ 얄팍하다/ 충동적이다/ 재미없다”고 표현되기도 한다. <죽은 숙녀들의 사회>를 쓴 제사 크리스핀은 1983년에 처음 출간된 이 책의 2018년판 서문에서 자신을 억압자보다는 피억압자로만 보려는 무의식적 편견을 경계하라고 강조한다. 예술 작품에 대해 말하는 태도가 더 포괄적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