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가 동화적이라고 하면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의 구조를 갖고 있다는 뜻일 때가 많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이전의 동화들은 잔인하고 끔찍한 면모도 있었지만, 그 이후로 우리가 아는 동화는 악당이 어쩌고 괴물이 저쩌고 하다가 마법처럼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야 만다. <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이야기를 통해 보는 장애에 대한 편견들>은 이런 동화적 엔딩에 한마디를 덧붙인다. “최소한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면 말이다.”
이 책을 쓴 어맨다 레덕은 에세이와 소설을 쓰는 작가로, 가벼운 뇌성마비와 마비된 쪽 근육의 긴장이 증가하는 증상인 강직성편마비가 있다. 그가 유럽에서 기원한 동화와 거기 깃든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더불어 의료기록에 기반한 자신의 어린 시절도. 수많은 동화는 주인공이 다른 무언가로 바뀌는 장면을 보여주곤 한다. <신데렐라>에서 공주가 되는 재투성이 하녀가 대표적이다. 주인공은 사회가 만든 틀에 맞게 멋있어지고, 아름다워지고, 그전보다 훨씬 더 사회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변한다.
동화에서 “어떤 식으로든 바뀌어야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라 이야기 속 주인공이다”. 문학에서는 장애도 도덕적 결함과 관련이 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현대에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그래도 사회를 바꾸고자 시도하면서 장애가 있는 주인공을 내세우곤 하지만, 그마저도 ‘감동 포르노’로 소비되곤 한다. 장애가 있는 몸은 부족하다는 생각의 연장선에서, 부족한 몸이 하는 어떤 일이든 더 어렵고 더 고귀하다는 식으로 포장하는 셈이다.
<라이온 킹>의 스카,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 <백설공주>의 (사악한 왕비가 변장한) 노파 등은 얼굴 변형, 얼굴 장애를 악당의 표식으로 사용하는 경우다. 이런저런 장애 때문에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공동체를 찾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성인이 된다 해서 백조가 될 리 없음을 아는 아이에게 <미운 오리 새끼> 읽기는 어떤 소용이 있을까. <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는 앞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이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 생각하게 만든다.
언어의 중요성
장애가 있는 몸은 나쁘다고 배우고, 이런 관점을 강화하는 언어를 사용한다면,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장애인은 그들의 육체적 한계를 이길 수 있고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강화하는 언어를 사용한다면, 장애를 배척하는 상황을 고착화하려는 사회에 참여하는 것이다.(3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