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법 책을 보면 시작을 최대한 강렬하게 제시하여 독자의 시선을 잡아끌어야 한다는 설명이 종종 눈에 띈다. 강렬함의 정도로 따지면 <남남>은 100점 만점에 150점은 받을 만화다. 더운 여름날, 남자 친구와 다투고 집으로 돌아온 진희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위하는 엄마와 마주한다. 대체 이 난감한 상황이 어떻게 이어질까 궁금해서라도 이야기를 계속 봐야 할 것 같은, 포털사이트 다음의 인기 연재작 <남남>의 시작이다. 진희가 엄마에게 데이팅 앱을 소개해주고, 화면을 같이 넘기면서 대화를 주고받는 가운데 ‘자만추’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의 줄임말)를 본 엄마가 ‘자지 만지는 추남?’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SNS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설정만 놓고 보면 쉽게 웃기 어려운 만화일 수도 있다. 고등학교 시절 어쩌다 진희를 임신한 엄마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맞고 살다가, 친구 민정의 도움을 받아 혼자 진희를 낳아 키웠다. 편모 가정에서 자란 진희의 오랜 친구 진수는 알고 보니 게이여서 남모를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설정들 이전에, 이 세계 어딘가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활기 넘치는 일화들이 먼저 다가온다. 집안일은 관심 없고 취미가 생기면 돈 들여 장비부터 사들이는 엄마, 고등학교 시절 잘생긴 얼굴과 시크한 성격으로 ‘백마 탄 왕자님’(줄여서 백마왕) 소리를 들었던 빨간 쇼트커트 머리의 진희, 우아한 외모와 달리 세상 누구보다도 욕을 잘하는 엄마 친구 민정.
맛집 잘 아는 친구 진수와 평양냉면을 먹으러 간 진희가 “고기 빨래한 물에 면 풀어 넣은 것 같다”라고 품평하는 대목은 평양냉면 마니아도 마니아가 아닌 사람도 웃게 될 것이다. 빌라에서 여성 속옷을 훔치는 도둑 아저씨를 우연히 붙잡는 상황은 현실적인데, 엄마가 그에 맞서 도둑에게 속옷을 택배로 계속 부쳐버렸다는 얘기는 참 재미있다. 각자 고민을 안고 있는데 그 고민이 웃음으로, 예상치 못한 위로로 풀리는 <남남>은 책으로 보면 시원시원한 색감이며 그림체를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다.
시선을 뗄 수 없다
“변태를 이기려고 이 빌라 최고의 미친년이 되는 것을 선택한 엄마였다.” (2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