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레터>

전작 <립반윙클의 신부>(2016) 이후 이와이 슌지 감독이 5년 만에 내놓는 <라스트 레터>(2월 24일 극장 개봉)는 편지로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유리(마쓰 다카코)는 세상을 떠난 언니 미사키를 대신해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다가 언니의 첫사랑 쿄시로(후쿠야마 마사하루)를 마주한다. 쿄시로는 유리를 미사키인 줄 알고, 유리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쿄시로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첫사랑에게 과거의 애틋한 기억과 마음을 편지로 전한다는 점에서 감독의 전작인 <러브레터>(1995)를 떠올리게 한다.

<씨네21>은 지난해 <야구소녀> 개봉 당시 <씨네21> 유튜브 영상에서 <러브레터>에 대한 진한 애정을 고백한 배우 이주영과 이와이 슌지 감독의 만남을 주선했다. OCN 시리즈 <타임즈> 촬영으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주영은 영화를 미리 보고 애정을 듬뿍 담아 편지를 썼고, 이와이 슌지 감독 또한 이주영의 출연작 <야구소녀>를 챙겨보고 정성스레 답장을 보내왔다. 서울과 도쿄, 거리는 가깝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만나기 힘든 두 도시에서 일면식도 없던 두 사람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이어갔다. 언젠가 만나자는 약속을 굳게 하면서.

*본 편은 <배우 이주영과 '라스트 레터' 이와이 슌지 감독의 서신 교환①>에서 이어집니다.

<라스트 레터> 촬영 현장의 이와이 슌지 감독. <야구소녀>를 보고 배우 이주영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편지에 적었다.

이주영님 처음 뵙겠습니다.

<러브레터>를 좋아하신다고 하니 매우 기쁩니다. 그 영화는 1994년에 촬영하여 1995년에 개봉했습니다. 일본에서는 1월에 고베에서 큰 지진이 있었고, 도쿄에서는 3월에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이 있었던 그런 해의 4월에 개봉됐습니다.

그 후, 이 작품은 한국이나 중국 외 많은 아시아 분들이 봐주실 기회를 얻었는데 그것은 당시에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었으므로 놀랐습니다. 지금도 내 인생에서는 매우 커다란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나 스스로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해 배울 기회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의미에서 굉장히 추억이 깊은 작품입니다.

<야구소녀>를 봤습니다. 최고 구속 130km/h. 프로가 되기에는 힘든 속도입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만 더이상 바꿀 수 없는 능력에 갈등하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은 리얼했습니다.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금 도전하는 마음의 소중함에 몹시 감동했습니다. 우리도 서로 미래에 대해서 어떤 보장도 되어 있지 않는 일을 하고 있기도 한데, 그러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더 잘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라스트 레터>의 출발점은 한국에서 촬영한 <장옥의 편지>였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로부터 스토리가 점점 부풀어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은 종종 있습니다. <장옥의 편지>를 만들었을 때는 편지라는 모티브는 있었지만 편지는 마지막에 조금 나오기만 하는 것이었으므로 <러브레터>를 의식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야기가 부풀어서 만들어지고 있었던 다른 이야기는 도중에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편지가 많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내 속에서는 또 하나의 <러브레터>와 같은 감각으로 즐겁게 완성시킬 수 있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서 두 가지 버전을 만들었는데, 이것도 내 안에서의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도전이기는 했지만 매우 즐거운 경험이 되었습니다. 언어의 벽은 그다지 힘든 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실은 이 이야기는 아직 완결되지 않아서 장편 서사 소설로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되면 완결됩니다. 기대해주십시오.

작품이 완성되어 세상에 나오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러브레터>도 한번은 수포가 된 기획이었습니다. 그 무렵을 돌이켜보면 만약 엎어진 그대로 두었다면 내 컴퓨터 속에 그 기획서만이 남아서 영원히 세상에 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주위에 있었던 프로듀서들의 정열 덕분이었습니다. <야구소녀>에도 협력을 해준 코치가 있었던 덕에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만남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지금은 코로나19 탓에 이러한 사람 사이의 만남도 막혀 있습니다. 실은 많은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한시라도 빨리 코로나19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찾아오기를 빌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힘든 시기이기는 합니다만 이번에 이주영님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편지라는 형태로.

신작 <라스트 레터>를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직접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2021년 2월 15일 이와이 슌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