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대한 최초의 기억’에 배꼽이라고 답한 사람이 있다. 유치원에도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이모부가 “갑자기 제 이름을 부르더니 이불 속으로 들어와보라고 하더라고요. ‘왜 이불 속으로 들어오라고 하지’라고 생각하면서 들어갔죠. 그러더니 ‘배꼽 좀 보여줘’라고 하는 거예요. 사실 이모부가 보고 싶었던 건 제 성기였을 거예요. 그걸 말하지 못하니까” 일단 배꼽을 보자며 웃옷과 바지를 벗으라고 한 것이었다. 이모부는 둘이 있을 때는 집요하게 배꼽을 보여달라고 했고, 본인도 배꼽을 보여주겠다고 하며 이불 안에서 옷을 벗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났다. 성인이 되고서야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의 이름은 ‘오드리’로 되어 있고, ‘화장품 카운슬러’로 일한다고 한다. 여성이 몸에 대한 말을 들려주는 팟캐스트 <말하는 몸>에 출연한 사람 중 88명의 말을 글로 다시 정리해 펴낸 <말하는 몸> 1, 2권을 처음 볼 때 눈길을 끄는 대목들은 누구나 이름을 알 법한 출연자들의 이야기다. 이슬아, 배리나, 권김현영, 장혜영, 임현주, 김진숙 등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자기 몸 이야기라니 어딘가 솔깃하지 않은가. 하지만 당신의 기대가 무엇이든, 이 책은 여러 여성들에게 몸이 어떤 경험의 통로가 되는지를 개인의 유명세나 경험의 특별함에 가중치를 주지 않고 담아냈다. 오드리의 경우처럼 본명이 아닌 이름을 쓴 경우도 있다.
1권에는 ‘몸의 기억과 마주하는 여성들’, 2권에는 ‘몸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여성들’이라는 부제가 있다. 몸의 기억을 맞닥뜨릴 때, 여성들의 개인사는 어떤 이야기가 될까. 여성의 몸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박 아래 있었다. 여성의 몸은 평가의 대상이었고, 그 평가는 너무나 자주 여성의 삶을 좌우했다. 여자의 말을 듣는다는 일은 어쩌면 그 각자의 몸에 깃든 기억에 귀를 연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문화화된 차별에 저항하기
남의 살을 함부로 대하는 게 습관이 된 상황이에요. 문화화된 차별이 정말 무섭죠. 그래서 우리는 정말 ‘말하는 몸’이 되어야 해요. 내 몸 세포 하나하나에 차별이 배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툭 나와요. 저도 예외라고 생각하지 않아요.(이라영) (<말하는 몸 > 2권, 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