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고픈 푸근한 공간으로 고향을 기억하는 사람과 결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고 그럴 수도 없는 공간으로 기억하는 사람 사이에는 깊은 틈이 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읽으면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동성애자로 살아가려는 젊은 게이에게 대도시나 수도로 탈주하는 일은 아주 흔한 고전적인 여정이다.” 미셸 푸코 전기 및 레비스트로스 회고록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프랑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디디에 에리봉은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고향 및 가족과 적극적으로 단절했다고 생각해왔지만 난폭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오랜만에 어머니와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에게 질문한다. 스스로 노동자 가정 출신임을 부정한 적은 한번도 없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노동자계급과 멀어지려고 애쓴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부모의 삶과 사상을 결정지은 사회·역사적 변화를 짚어나간다. 먹고살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어려서부터 노동시장에 나선 그들은 한때 공산주의자였지만 좌파 정당이 노선을 잃고 변해가는 동안 어느새 ‘프랑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극우 정당 국민전선을 지지하게 된다. 사회의 그 어느 계급에도 자연스럽게 뿌리내릴 수 없다는 의식이 이 책을 관통한다. 죽을 만큼 일에 매달리며 사는 한편 교양을 무시하고 남녀 역할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어른들, 도심에서 떨어진 ‘추방’ 장소 같은 교외 주택단지에서 보낸 유년 시절.
그는 고상하고 지적인 세상을 열망했고, 지식인이 되어 부르주아 문화를 접하게 되었으나 위선적이고 잘난 척하는 태도는 싫고 낯설다. 그의 일부는 여전히 민중 세계에 자리 잡고 있으니 내면이 분열될 수밖에 없다. 이 분열이 쉽게 봉합될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을, 고향이나 가족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독자라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투리나 억양을 고치는 작은 사건에도 얼마나 큰 사회·문화적 의미와 균열이 기입되어 있는지 말이다.
사진에 찍힌 몸
“과거의 사진에 찍힌 몸들이 우리 시선에 얼마나 즉각적으로 사회적·계급적 신체로서 나타나는지 확인하는 일은 언제나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