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대만의 타이난을 말할 것이다. 타이난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다. 대만은 오랫동안 식민지 시대를 겪었고, 그 때문인지 나는 대만을 여행하는 내내 어떤 익숙한 흔적들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타이난에서 그랬다.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에서 흘러나온 문물들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스스로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일이기도 해서 처음에 나는 그 감각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이런 감정이 흘러넘치는 걸 왜 막을 수 없는 걸까. 그건 내가 태어난 나라를 기억하고, 그 역사의 흔적에서 태어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기도 해서 그랬던 것 같다. 타이난에는 대만의 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잊을 수 없고,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말이다. 그 도시 자체가 스스로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과거와 현재 모두 내 것이라고. 어느 것도 잊지 않을 것이라고.
지금도 나는 종종 타이난에서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보곤 하는데, 이미 과거가 된 나를 바라보면서 그때의 추억과 경험들, 다가왔던 영감들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여전히 어떤 느낌은 남아 있다. 풍경에 사로잡혔던 순간, 충격을 받은 찰나, 강렬하게 다가오던 어떤 날의 분위기, 빛과 소리, 냄새들. 그건 일종의 어떤 다짐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도시처럼, 나도 이날의 기억까지 간직해서 계속 나 자신으로 살아가겠다는 마음가짐.
<상견니>(想見你)의 뜻은 ‘네가 보고 싶다’이다. 나는 지난 연말 내내 이 드라마를 보았는데, 뭐랄까, 다사다난했던 일년 중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시기였던 것 같다. 어딘가에 나갈 수도 없고, 누군가를 만날 수도 없으며, 매일 어떤 위협이 조금씩 좁혀 들어오는 것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를, 청춘들의 설레는 마음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이 드라마의 배경은, 모든 시간을 보관하고 있는 도시, 내가 사랑하는 타이난이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상견니> 1, 2화를 보고, 드라마 보는 걸 관둘 뻔했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냥 이 이야기가 여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타임슬립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이야기를 즐기는 편이고, 타임슬립물 역시 당연히 그중 하나이지만 그즈음에는 약간 물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 또 타임슬립 로맨스야?’ 하지만 나는 아주 다급히, 그 결정을 취소했다. 왜냐하면 과거로 돌아간 여주인공 황위쉬안이 만난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왕취왕성이 아니라 리츠웨이라는 소년인데, 두 사람은 얼굴이 똑같다. 동일인물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과거로 돌아간 황위쉬안은 천윈루라는 소녀의 몸에 갇히게 되는데, 그 소녀 역시 자신과 생김새가 똑같다!
대체 이 관계는 어떻게 된 것인가. 더불어 그곳에는 모쥔제라는 친구가 있는데, 이 애는 황위쉬안이 살고 있는 시간대(현재)에는 나타난 적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리츠웨이, 천윈루에게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두명이 아니라 다섯명인 셈이다. 리츠웨이, 왕취왕성, 황위쉬안, 천윈루 그리고 모쥔제. 그때 나는 생각했다. 잠깐, 주인공이 너무 많은 거 아냐? 동시에 또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풀어나갈 생각이지? 스포일러를 하지 않고 결말에 대한 내 감상만 말하자면 그 해결은 기가 막혔다. 그래! 이 맛에 드라마를 보는 거지. 청춘 로맨스 만세!
매우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이 공이 천윈루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시간대에 살던 이 소녀는 황위쉬안의 타임슬립으로 인해 잠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 존재감은 내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건 천윈루가 자존감 낮고, 소극적이고, 자신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마음 약한 10대 소녀였기 때문이다. 그 나이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솔직히 나는 그동안 로맨스 드라마를 보며 여자주인공이 지나치게 성숙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반대로 너무 유아적이거나). 물론 그건 내가 그만큼 어른스럽지 못한 탓이 클 것이다. 여주인공에게 몰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여주인공들은 성숙한 만큼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 보이곤 했다.
황위쉬안이 그런 캐릭터이다. 똑똑하고, 예쁘고, 성숙하고, 활발하고, 용기 있는 사람. 말 그대로 여주인공. 남자주인공이 황위쉬안을 사랑하게 되는 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천윈루는? 그 애는 자신조차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그걸 위해 진짜 자기 자신을 지워나간다. 이 사랑은 미성숙하고 이기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나이와 성격을 생각하면 그럴 법한 행동이다. 온 힘을 다한 최선이다. 그보다 더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나라면 못했을 것이다. 더 엉망진창이었겠지.
천윈루를 좋아하는 모쥔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애 역시 어리기 때문에 상대의 불행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좋아하기 때문에, 그 마음은 진심이기 때문에, 과거의 아이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그 때문에 상처가 생긴다. 그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낳고, 상황을 좋아지게 만들려는 모든 노력은 미래를 복잡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사랑을 지키기 위한 각자의 노력은 결국 사랑을 끝없이 잃게 만든다. 보고 싶을수록,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간다.
하지만 이건 청춘 로맨스이고, 결국은 모두에게 기회를 준다. 나는 <상견니>를 보는 내내, 유독 행복한 기분이 들었던 이유가 뭔지 생각해봤다. 그건 앞서 말한 것처럼 이 다섯 주인공이 자신의 한계 안에서 어쨌든 최선을 다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미성숙하고 이기적이고, 필사적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친구들을 생각하고 배려하고 다정한 말을 건넨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마음을 표현하며 애를 쓴다. 왜냐하면 좋아하니까. 내 사람에게는 잘해주고 싶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주고 싶으니까.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그리우면 그립다고 한다. 바로 그것이 사랑이니까. 그러면서 그들은 조금씩 성숙해진다. 천윈루는 그 성숙한 사랑으로 기회를 얻는다. 그러니까 이 성장을 지켜보는 일은, 과거의 나를 용서하고 여전히 미성숙한 내게 조금 더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어쩐지 타이난에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파란 하늘. 하얀 교복. 비가 내리는 오후. 설탕 꽈배기와 팥빙수, 옛 기억이 가득 담긴 노래들. 그러니까 우바이의 <Last Dance>. “잠시 눈을 감아 봐. 네가 준 사랑. 무기력한 기다림. 나 혼자 가야 하는 걸까. 네가 잡아주면 좋겠어.” 서로를 붙잡는 이야기. 과거와 현재가 함께 있는 이야기. 너를 보고 싶다는 말은, 결국 기억한다는 말. 잊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성장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