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이 왔다. 나는 본래 연말연시에 이벤트를 즐겨 하는 편이다. 원가족과 살 때는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손을 꼭 잡고 가족파티를 했다. 지금 함께 사는 사람과도 작은 행사를 했다. 지난해 1월 1일에는 아부다비에 있는 모스크에 갔었다. 지지난해에는 동거묘에게 스카프를 묶어주었다. 삼작년에는 동거인의 부모님을 모시고 좋은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올해 세밑은 한해의 끝이나 시작이라기보다는 코로나 시대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의 한가운데 같았다. 이벤트를 하려고 해도 마땅히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여행을 갈 수도 비동거 가족을 만날 수도 없었다. 눈치가 더 빨라진 고양이들은 이제 가만히 앉아 옷을 입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 새해 기분을 내고 싶었다. 세밑 분위기가 날 만한 모든 일을 했다. 꽃을 샀다. 화훼농가돕기 웹사이트에서 산 장미꽃 다섯 송이. 날씨가 너무 추워 배송까지 한참이 걸렸지만 다행히 새해 첫달에 받긴 받았다. 오랫동안 놀고 있던 꽃병을 꺼냈다. 매달 조금씩 넣는 적금을 시작했다. 온라인 친구들과 하루 한장씩 일력에 메모를 남기는 일력모임을 만들고, 장마다 일러스트가 그려진 작은 일력을 준비했다. 일력모임 인스타그램 계정에 예쁜 사진을 올리려고 사진 촬영 바탕지도 장만했다. 꼬마 전구를 켰다. 분위기를 바꾸려 부엌 커튼을 방으로 옮겨 달았다. 청소도 했다. 맞지 않거나 오래 안 입은 옷가지를 골라내고 손 가지 않는 곳에 쌓인 먼지를 닦았다. 서랍마다 방충제와 제습제를 새로 넣고 여름옷과 가을옷에 커버를 씌웠다. 지난해 현장에서 한번도 흔들지 못했던 커다란 무지개 깃발을 꺼내 벽에 걸었다.
생활을 정리한 다음에는 일을 정리했다. 명목상 안식년이던 2020년 잠깐 활동을 쉬었던 단체들에 다시 일을 시작한다고 알렸다. 내가 안식하던 사이에도 현장은 쉬지 않았다. 많은 동지들이 연말연시를 황량한 거리에서 보냈다. 내가 감사를 맡고 있는 김용균재단은 해를 넘기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을 했다. 한파에도 고생하며 단식을 계속했다. 어떤 이는 전국일주를, 어떤 이는 오체투지를 했다. 어떤 이는 난방과 전기가 끊긴 사업장을 지켰고 어떤 이는 기자들이 오지 않는 기자회견을 했다. 그 모든 현장의 앞뒤를 지켜 온 동지들에게 2020년을 잘 보냈는지 묻지 않았다. 2021년이라고 코로나가 어디 가겠냐는 말보다는 2021년에는 함께하겠다는 말을 하려고 노력했다.
새해를 맞아 생활과 일을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날마다 하나씩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2021년이 2020년보다 나아지리라고 믿는데는 단 음식이 필요했다. 빵또아. 붕어싸만코. 찰떡아이스. 월드콘.
아이스크림이 없을 때에는 초콜릿이라도 먹었다. 군것질을 한 만큼 새해는 나아질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근거가 아니라 간식량에 바탕한 믿음이었다. 우울한 소식이 들리면 뉴스를 보지 않았다. 믿음에는 의식적 무지도 한 스푼쯤 필요하다. 유튜브 알고리즘 자동재생으로 K팝 콘텐츠를 틀어놓고, 부엌에 있던 레이스 커튼을 옮겨 단 방에 앉아 작은 만다라를 그렸다.
새해라고 당장 해결되는 일은 없다. 달라지는 것도 당장은 최저임금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일부러, 2020년의 끝과 2021년의 시작에, 있는 힘껏 줄을 그어 보았다. 근거 없는 믿음과 용기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