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만큼 1월 1일이 오길 간절히 기다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뒷자리 숫자가 하나 바뀐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많은 것들이 변할 리 없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뒤로하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을 의지를 주는 새해맞이 ‘리셋’의 효과가 올해는 더 절실했으니까. 그러나 새 출발의 산뜻한 기분을 만끽할 새도 없이 팬데믹 시대의 엄혹한 리얼리티는 겨울바람처럼 매섭게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대한민국을 분노로 들끓게 한 정인이 사건을 시작으로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까지 그야말로 다이내믹한 사건 사고를 릴레이로 접하고 나니 일시적인 기분 전환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떤 일을 겪게 되더라도 일시에 무너지지 않도록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을 바꿀 수 없을 때, 현실이 아닌 세계로의 도피는 꽤 유용한 출구가 된다. 2021년 출격을 앞둔 많은 한국영화 신작들이 우주로(<더 문> <승리호>), 이국의 땅으로(<모가디슈> <교섭>), 초능력(<방법: 재차의>(가제), <마녀2>)과 SF(<서복> <원더랜드> <외계인>)의 영역으로 나아가며 현실과 점차 간극을 벌리고 있다는 점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드라마, 스릴러, 액션 장르가 우세했던 한국 상업영화 시장에 경이롭고 신비로우며, 때로는 위험한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고자 하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현실로부터의 탈주라는 동시대적 열망뿐 아니라 해를 거듭할수록 확장되는 영화적 체험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또 다른 2021년 기대작이자 한국영화 최초로 라이브 녹음에 도전한 뮤지컬영화 <영웅>, 한국형 항공 재난영화를 표방하는 <비상선언>, 거북선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인 해상 액션을 선보일 <한산: 용의 출현> 역시 창대한 스케일과 차별화된 소재로 영화적 경험의 극대화를 지향하는 작품들이다. 극장에서 관람해야 할 이유가 너무나도 명확한 이들 작품이 연초부터 최저 관객수를 경신한 위기의 한국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가 2021년 한국영화계의 주요 관전 포인트일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앞서 언급한 작품들과 더불어 <특송> <야차>(가제) <발신제한> <소울메이트> <경관의 피>(가제) <카운트> <해적: 도깨비 깃발> <1승> <비광> <마이캡틴> 등 15편의 한국영화 신작을 연출한 감독들과의 만남을 전한다. 대부분의 작품이 최초 공개로, 코로나19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2021년 한국영화의 심기일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번 호에서는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의 풍경을 때로는 사려깊게, 때로는 날카롭게 조망해온 두 필자와의 작별 소식과 새로운 필자의 합류를 전한다. 먼저 디스토피아로부터의 고정 필진이었던 문학평론가 오혜진씨와 이동은 감독이 각각 이번호, 다음 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종료한다. 두 필자와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이번 호에 이다혜 편집팀장이 취재한 이동은 감독, 정이용 작가의 신작 만화 <진, 진> 소식도 눈여겨봐주시길 바란다. 더불어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멤버 윤덕원씨가 칼럼 ‘노래가 끝났지만’의 새로운 필자로 합류했다. 그가 가사를 쓰면서 한 생각들을 자유롭게 펼쳐보는 지면으로, 첫 원고부터 여운이 깊다. 다음 호부터 합류할 또 다른 필진도 기대해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