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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프'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말할 수 있는 것들
남선우 2020-12-15

마리아 소달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로부터 출발한 영화 <호프>는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을 거쳐 신년을 맞는 한 가족의 일주일가량을 따라간다. 시작은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연극 연출가 안야(안드레아 베인 호픽)가 집으로 돌아오면서부터다.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귀가한 안야는 굳은 결심을 한다. 큰 병이 곧 자신을 죽음으로 데려갈 것임을, 사실혼 관계인 파트너 토마스(스텔란 스카스가드)와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기로 말이다. 어렵게 마음을 추스른 안야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실을 고백한 후부터 영화는 본격적으로 안야와 토마스의 관계에 집중한다. 권태롭게 가정을 유지 중이던 두 사람에게 한명의 죽음이 가까워오자 뭉쳐 있던 응어리들이 터져나온다. 이들은 이전의 시한부 소재 영화에서 자주 다뤄지지 않았던, 어찌 보면 더 현실을 닮아 있을 지난하고 유치한 감정을 꺼내놓으며 서로를 괴롭히길 반복한다.

<호프>는 결말까지 잔잔한 호흡으로 걸으며 삶과 관계의 끝자락을 예감하는 연인의 시간을 요약한다. 죽음이 다가와도, 아니 오히려 죽음이 눈앞에 보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솔직해지고 상처를 주는 이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크고 작은 싸움 끝에 이뤄지는 이들의 마지막 선택은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다. 제33회 유럽영화상에서 감독상과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라벨유럽영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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