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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 인터뷰②] '기적' 민병훈 감독 "아내와의 마지막 추억을 담은 영화다"
남선우 오계옥 2020-12-08

어느 때보다 당혹스럽게 시작된 2020년. 그 마지막 달이 당도했음에도 팬데믹의 혼란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일까. 올해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기적>의 제목은 거창하거나 간지럽게 들리기보다 극진하고 간절하게 스며온다. 1998년 데뷔작 <벌이 날다>로 토리노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후 <터치> <사랑이 이긴다> <황제>로 ‘생명에 관한 3부작’을 마무리한 민병훈 감독 또한 기도하는 마음으로 ‘약속 3부작’의 시작인 <기적>을 만들었다.

그 기도의 중심에는 영화가 완성되기 전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기적>의 각본가이자 민병훈 감독의 아내인 안은미 작가가 있다. “아내가 이 시나리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둘이 같이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어나갔다.” 안은미 작가가 쓴 이야기에는 한 사람을 찾는 두 남녀가 등장한다. 파산 선고를 받은 장원(서장원)과 병을 앓는 지연(박지연)이 그들이다. 장원에게 사기를 친 이가 바로 지연의 헤어진 남편 민교(박병준)이기에, 민교를 찾아 못다한 일을 마무리 짓고 싶은 두 사람은 뜻밖의 동행을 통해 교감한다.

영화는 희망을 발견해내고픈 이들의 몸부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진심을 향해 가는 인물의 고결함”도 짚으려 한다. 민병훈 감독은 그 순수성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 제주도의 자연을 담았다. “물, 불, 바람과 같은 자연의 요소들을 보여줌으로써 인물들의 서걱거리는 마음을 은유하고 싶었다. 자연을 영화에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투영하는 것. 그걸 러시아에서 영화 공부를 할 때 배웠다.” 실제로 제주도 애월에 거주 중인 민병훈 감독에게는 제주의 언제 어디에 안개가 끼는지, 파도가 몰아치는지, 햇볕이 내리쬐는지에 대한 리스트가 있다. 이번 영화에도 단 세명의 키스탭이 참여하는 등 최소한의 인원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기에 “자연이 미술감독이고 자연광이 조명감독”이라고. 그에게는 그 아름다운 촬영 현장에서 잠시나마 아내와 함께한 추억도 소중히 남게 되었다. “무겁고도 어려운 마음을 안고 작업한 영화다보니 실은 아직도 작품을 마주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만든 이들이 우정과 헌사를 담아 완성했으니 이렇게라도 결과물을 소개해야 하지 않을까. 아내도 그걸 원할 거라고 생각한다.”

<기적>

감독 민병훈 출연 서장원, 박지연 제작연도 2020년 상영시간 81분 개막작

<터치> 이래로 꾸준히 상업영화 위주의 배급 방식에 문제를 제기해온 민병훈 감독은 최근 자체적인 상영 시스템을 마련해 관객을 만나왔다. 커뮤니티 시네마에서, 온라인 직거래를 통해서, 영화를 신청한 관객의 집에서 그의 작품은 계속 숨 쉬었다. “벌써 100번은 넘게 자체적으로 상영을 했다. 학교도 가고, 아파트 단지에도 갔다. 다리가 아파서 나갈 수 없으니 집으로 와서 영화를 틀어달라고 한 할머니 관객도 있었다. 이렇게 관객과 직접적으로 조응하는 것에 가치를 느낀다.” <기적>도 올해 서울독립영화제가 끝나면 그런 식으로 세상에 한 걸음씩 나아갈 예정이다. “매일이 첫날이고 마지막 날이다. 하루하루가 기적과 같다는 뜻이다. <기적>은 그에 대한 감사함을 말하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이 각자의 고결함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귀하게 여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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