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는 TV나 잡지 등에 소개되는 다양한 수집가들을 보면서 언젠가 자본 여력이 된다면 개인이 모은 수집품들을 모아 ‘박물관의 박물관’을 만들고 싶었다. 각자에게는 소중하지만 박물관으로 가기엔 다소 가치가 떨어지는 개인의 하찮은 수집품들을 모은 박물관 말이다. 그런 수집품들은 대부분 개인의 생애와 함께 사라져버리는 게 보통이라 그게 너무 아쉬웠다. 울산에 사는 김씨가 수십년 동안 모았던 각종 라면 봉지나, 서울 사는 박씨가 모은 오래된 전자제품 등 이런 수집품들이 한데 모여 있는 박물관이라니, 생각만 해도 멋지다.
나 역시 소소한 수집을 하고 있는데, 물건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채집 활동으로, 대략 2006년부터 틈틈이 거리의 간판 사진을 찍고 있다. 대개는 오래된 간판이나 손으로 직접 쓴 글씨, 수작업으로 제작한 간판들이다. 1천여 군데 장소에서 채집한 사진들은 하드디스크에 저장해두었지만 ‘걷다가 만난 글자’란 이름의 인터넷 블로그(2777.tistory.com)에도 아카이빙을 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방문해서 구경할 수도 있다.
인터넷에는 나처럼 시각 채집 활동을 하며 이미지 데이터를 축적하는 이들이 꽤 많다. 무지개 모양이나 무지개 색상 조합과 관련된 것만 모아서 전시하는 계정, 거리에 버려진 것들만 찍어서 올리는 계정, 식당이나 가게의 여러 효능을 쓴 정보 판을 모으는 계정 등 다양한 채집 활동 계정이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에 모여 ‘박물관의 박물관’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채집 계정은 보통 혼자만의 채집 활동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더러는 제보를 받아 채집 활동의 참여를 유도하면서 소셜미디어라는 매체에 어울리는 아카이빙 활동을 한다. 수집이 데이터로 이루어질 때의 장점은 수집품을 보관할 부동산과 그로 인해 발생할 자금 압박이 없고, 서비스가 정지되지 않는 한 그 이미지를 언제나 네트워크를 통해 볼 수 있고 또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나는 예스럽거나 마음에 드는 혹은 별난 간판 사진을 찍어 올린다.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거나, 그동안 찍은 이미지들을 주변에 보여주면 그걸 찍어서 뭐 하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모으면 돈이 생기나?” “모아서 나중에 뭐라도 할 건가?” 돈은 생기지 않는다. 오리지널도 아닌 복제 가능한 채집 데이터에 가치를 매길 사람은 없을 테지. 모아서 꼭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위에서 언급한 ‘박물관의 박물관’이 있지만, 그것을 염두에 두고 채집 활동을 한 적은 없다. 그러니까 채집의 ‘무엇’은 채집 그 자체에 있다. 채집 활동의 순간은 복제가 불가능한 온전한 나의 경험이다. 굳이 가치를 부여한다면 그 경험이 가치가 있지 않을까. 남들이 구경하며 즐거워해준다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