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은 추억을 타고
동성아트홀
이환 감독
<박화영> GV로 대구 동성아트홀을 찾은 적이 있다. 나에게 동성아트홀은 그날의 추억으로 기억되는 공간이다. 조그만 극장 안에 줄 지어 있는 빨간 의자 그리고 무엇보다 열정적인 관객…. 동성아트홀은 사람이 많이 붐비는 시내 거리 안에 있다. 극장은 정말 아기자기하고 로비 또한 소박하다. 작고 아기자기한 우리만의 공간, 마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밀 아지트 같은 곳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찾아갔을 때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는 것처럼 동성아트홀 역시 추억의 공간이 주는 포근한 느낌으로 충만한 곳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하나하나 떠오른다. 동성아트홀에서 열렸던 <박화영> GV에 오셨던 관객의 얼굴, 그리고 그날의 커피 맛까지….
유지영 감독
<수성못>
“카메라 그렇게 메면 렌즈 다쳐요.” 첫눈에 봐도 인상이 강한 눈매의 K가 건넨 첫마디였다. 오랫동안 외양선을 탔던 아버지가 물려준 수동카메라였다. 은연중에 꽤 고상하다고 생각한 그 취미를 겉으로 드러내고 싶었나보다. 그래서였을까. 그 무렵엔 영화관도 그냥 영화관이 아니라 예술영화관이라고 불리는 곳에 자주 드나들었다. 이곳에 온 자와 오지 않은 자를 묘하게 두 부류로 나누는 것 같은, 그리고 이곳에 와 있는 내가 괜히 우위에 선 것 같은 다소 이상한 승리감을 주는 곳. 생각해보면 낭만밖에는 가진 것이 없어 가난한 내게 정신적 사치를 마음껏 허용한 이곳은 당시 유일하게 대구에 존재했던 예술독립영화관 ‘동성아트홀’이었다.
나는 몇월 며칠에 동성아트홀 정모가 있고 어느 날에는 번개가 있으며 어떤 회원과 어떤 회원이 사귀고 최근에 헤어졌는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영화뿐만 아니라 동성아트홀의 일상사에도 관심이 많았다. 어느 날 번개에 참석하기 위해 동성아트홀을 찾았고 영화를 보고 나와 극장 매점 앞에서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주길 기다리며 괜히 영화 팸플릿을 뒤적이고 있는데 K가 뚜벅뚜벅 걸어와 다짜고짜 그런 지적을 한 것이었다. 그 후 ‘특별한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칭하며 묘한 관계를 이어가다 내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대구를 떠나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K와 나는 서서히 멀어졌다. 뜸하게 주고받은 연락을 통해 그도 대구를 떠나 서울살이를 시작했다는 것과 일이 녹록지 않다는 것 등을 알 수 있었다. 학부를 마치고 대구로 내려온 뒤 나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졸업 작품으로 만든 단편영화가 영화제에서 큰 성과를 얻으며 반짝 유명해진 나는 ‘감독’이라 불렸지만 미래는 막막했다.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했다. 4년 만에 동성아트홀을 찾아 매표를 하고 들어갔는데 곧 익숙한 뒤통수 하나가 보였다. K가 거기에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이윽고 조용히 극장 안이 어두워졌고 영겁같이 느껴지는 두 시간의 상영시간 동안 나는 도대체 K가 왜, 여기, 어떻게 있는가 묻고 싶은 마음으로 그의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 뒷이야기는? 극장이란 너무 뻔한 장소에서 너무 뻔한 우연으로 만나 그것을 운명이라 믿으며 너무 뻔하게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아무도 영화로 만들려고 하지 않겠지? 그래서 내가 그 뻔한 ‘친목’으로 만나 8년째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어느(!) 두 남녀의 연애를 영화로 준비하고 있다. 너무 뻔해서 내가 아니면 아무도 영화로 만들 것 같지 않아서 쓰기 시작했는데 쓰고 보니 마냥 뻔하지만은 않더라. 연애란, 사랑이란. 궁금한 분은 나의 다음 영화를 기대하시라. 동성아트홀과 우리의 사랑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