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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엽 편집장] 내 마음속의 독립예술영화관
장영엽 2020-11-27

12월이 다가오면 가끔 생각나는 풍경이 있다. 지금은 사라진 예술영화관 하이퍼텍 나다에서 연말마다 개최하던 영화 기획전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를 보기 위해 대학로를 가로지르던 모습이다.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는 대개 기말고사가 마무리되던 시기에 시작했기 때문에, 대학생이던 나는 마치 연말 선물을 받는 기분으로 한해의 주목할 만한 독립예술영화를 연달아 상영하는 이 기획전에 참석하곤 했던 것 같다.

극장에 앉으면 유리창 밖으로 소담스러운 정원과 장독대가 보이고, 영화가 시작되기 전 촤르륵 소리를 내며 닫히는 커튼이 인상적이었던 하이퍼텍 나다는 그곳에 잠시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관객으로서 소중히 여겨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극장이었다. 멀티플렉스처럼 일상적으로 찾는 공간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느낀 사려 깊은 관람 경험이 영화의 곁에 오래 머무르는 데 모종의 영향을 주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화를 사랑하는 누구에게나 그들 각자의 영화관이 있다. 이번호 특집에는 11월부터 12월 초까지 전국 15개 독립예술영화관에서 열리는 ‘세이브 아워 시네마 프로젝트: 우리 영화의 얼굴’ 기획전 소식과 더불어 영화인 15인(김대환 감독, 김보라 감독, 배우 겸 감독 문소리, 연상호 감독, 예지원 배우, 유지영 감독, 윤가은 감독, 윤단비 감독, 이민지 배우, 이환 감독, 임대형 감독, 장우진 감독, 장항준 감독, 정재은 감독, 정하담 배우)의 에세이를 실었다.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부터 광주극장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의 독립예술영화관에 대한 애정 어린 코멘트를 보내온 이들의 글은 흡사 단편소설처럼 드라마틱하고, 때로는 눈물을 자아낸다.

<여배우는 오늘도>를 연출한 문소리 감독 겸 배우는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 전여빈 배우와 함께했던 관객과의 대화를 추억한다. 오랜 무명 시절을 보내다가 <여배우는 오늘도>를 통해 처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딸의 모습을 고향 강릉에서 스크린으로 접한 전여빈 배우의 어머니를 보며 느꼈던 감정에 대한 소회다. 광주에서 10대 시절을 보내며 언젠가 자신이 만든 영화가 광주극장에 걸리길 소망했던 윤단비 감독은 <남매의 여름밤>으로 마침내 그 꿈을 이루던 순간의 감격을 이야기한다. ‘떡집 딸’이었던 <벌새>의 김보라 감독은 1월 1일 아트나인에서 관객과 함께 떡국을 먹던 순간의 즐거움을 기억하고, 대구 동성아트홀의 열혈 회원이었던 <수성못>의 유지영 감독은 극장에서 만난 ‘특별한 친구’와의 미묘한 관계를 이야기한다.

이들의 글은 독립예술영화관이라는 공간이 개인의 일생에 얼마나 많은 기회와 우연과 영감과 사랑을 제공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코로나19 확진자가 500명을 돌파하고, 규모의 상업영화가 하나둘씩 극장 개봉을 연기하며, 재난 문자의 알람이 실시간으로 울리는 잿빛 연말의 초입에서 들려오는 독립예술영화 기획전 소식이, 마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극장과 영화를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위로처럼 느껴져 뭉클하다. 우리의 관람 경험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독립예술영화관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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