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작가의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는 책을 읽는 어른들에게,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자고 말한다.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했고, 독서교실을 운영하며 아동·청소년들과 함께 책을 읽어온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를 독서교실의 고객으로 응대하는 데 진심이고, 그 진심의 일환으로 어린이 고객들의 속내를 섣불리 짐작하는 대신 그들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존중이고 대화다. “책은 내가 어린이보다 많이 읽었을 텐데, 어떻게 된 게 매번 어린이한테 배운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린이라는 ‘타자’를 대하는 법에 대해 머리를 맞댄다. 머리는 어른끼리가 아니라 어린이와 어른이 맞대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누구나’ ‘한때’ 어린이였다는 사실에 있다. 어떤 어른은 자신이 애정으로 돌봄받지 못한 데 대해 세상 모든 어린이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은 것처럼 보이고, 어떤 어른은 여전히 자기 안의 어린이를 이해받고자 애를 쓰는 듯 보인다. 또한 어떤 어른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로 미루어 지금의 어린이들을 넘겨짚으려 한다. 함부로 넘겨짚는 어른들의 머릿속에서 자기 자신은 늘 말수 적고 얌전한 어린아이였다. 그렇게 자기 안의 어린이를 상대하느라 정작 세상에 존재하는 어린이들에게 각박한 세상 자체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어린이라는 세계>는 성인 독자들이 어렸을 적에 입은 상처를 도닥여주기도 하고 좋은 기억을 되살려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린이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고심하게 한다. 스포일러를 하자면 답은 이 책에 있는 게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있다.
어린이에게 좋은 경험을 주려고 해봤자 다 잊어버린다고, 그러니까 크기 전까지는 굳히 잘해줄 것도 없다는 말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어린이의 품위’를 읽어보시길. 정중한 대접이 어린이에게 얼마나 기억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이라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이들이 각자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야말로 새로운 자신이 되는 성장의 방법 중 하나임을 알지만 모든 무서운 일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어른들이 확실히 행동해야 할 때도 있다. “어른 김소영이라면 그러지 못했을 텐데, 어린이 김소영은 선생님의 사소한 실수들을 쉽게 용서한 것 같다”는 문장에 다다르면 어른이 약속을 지키기를 기다리는 어린이들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갑작스런 각오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자기보다 나중에 농구나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면 어린이들이 얼마나 확신에 찬 조언을 빙자한 잔소리를 하는지. 자주 웃기고 자주 울리는 책인데, 책 속 모든 일이 보여줄 만한 에피소드로 소비되는 대신 진지한 경청의 태도 안에서 글로 남았다는 인상이 들어 시종일관 감탄하게 된다. “존댓말을 들은 어린이는 살짝 긴장하면서도 더욱 예의 바르게 대답하려고 노력한다. 마치 그런 대화가 몸에 밴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것 같다.” 그럴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귀여워하는 표정을 짓지 않고 마찬가지의 진지함으로 응대해야 한다. “우리는 어른이니까.” 우리는 어른이니까, 아는 어린이를 사랑하는 만큼이나 모르는 어린이를 존중하고 그들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 되어주자. 주택 청약 때문에 입양된 아이들이 처참하게 죽었다는 뉴스가 더이상 반복되지 않게 하고 싶다고, 이 책을 읽으며 몇번이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