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병석에 있는 사람이, 부모의 병세를 기록한 책을 꺼내 드는 것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일이다. 처음부터 울 준비를 하고 (코를 아무리 풀어도 살이 짓무르지 않는 보드라운 각 티슈 상비) 독서를 시작했다. <엄마의 마지막 말들>은 말기암 판정 후 1년간 와병 생활을 한 어머니의 마지막을 인문학자 아들이 기록한 책이다.
말기암과 알츠하이머성 인지저하증을 진단받은 저자의 어머니는 호스피스 병동 여러 곳을 전전했고, 저자는 1년 동안 휴업하고 간병인이자 관찰자로서 어머니의 ‘말’들을 채집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향정신성 약물을 투여받고 정신이 맑지 않았던 어머니의 말들은 대부분 혼몽하고 정체가 불명하다. 짤막한 한두줄에 그치는 어머니의 발화를 아들이 길게 풀어서 해석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병석에서 툭툭 하는 어머니의 말들은 맥락은 없지만 의미가 없는 말은 아니다. 그것을 어머니의 생과 결부하여 독해하면 된다. 환자를 간병해본 사람은 환자의 말이 대부분 지시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엇을 달라, 어디가 불편하다, 무엇이 필요하다…. 제 몸을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기에 간병인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하고, 도움을 청해야만 한다.
대개 이런 말들은 짜증이 묻어 있다. 하지만 책 속 어머니의 말들은 자신이 아닌 아들의 상태에 대해 하는 말들이 대부분이다. 이 닦았나?/ 공부하다 오나?/ 거 앉아라./ 춥다. 옷 더 입어라./ 옷 좋네. 잘 샀다./ 춥다. 목도리하고 다니라./ 돈 있나? 용돈 좀 주까?/ 조금 일찍 왔으면 여기서 밥 묵었을낀데 등등…. 병원에 오면 손부터 씻는 아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으며 “수건 거 있네”라고 챙기던 어머니의 말에는 그래서 한결같은 관심과 사랑과 보살핌이 묻어 있다. 몇개의 호스피스 병동을 거치며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 정리한 내용들은 한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까지 환기시키고, 언젠가 다가올 나와 내 가족의 죽음에 대해서도 사념하게 한다.
엄마가 말했다
나는 니가 못 올 줄 알았다. 북부병원에 계실 때 하신 말이다. 병실을 들어서자 이리 말씀하셨다. 평시와 비슷한 시간에 갔건만 이리 말씀하셔서 의아했다. 엄마는 이날 따라 내가 오는 걸 더 기다리셨던 걸까. ‘못올 줄’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언젠가는 엄마를 못 찾아갈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일 터이다.(1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