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체 인구의 대다수가 사는 동안 어느 시점에는 폭력적인 범죄를 경험한다.” 이 문장은 미국에만 해당되지 않기에 <몸은 기억한다-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개정판)은 놓칠 수 없는 책이다. 외상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와 정보를 담고 있는 이 고전은, 트라우마가 하나의 정신 질환으로 인정받기까지의 지난한 역사적 과정부터 트라우마와 뇌 및 신체가 실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과학적 근거를 설명하며, 약물 말고 어떤 대안적 치료가 있는지 살핀다.
뇌의 화재경보기 역할을 하는 편도체는 위협을 먼저 감지하여 스트레스 호르몬 시스템을 가동한다. 한편 전두엽은 감시탑 역할을 한다. 위협이 실제로 위험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생하면 편도체는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지 못하며, 전두엽과의 균형이 깨진다. 또 감각을 인지하는 뇌 영역의 활동이 정지되기도 한다. 그 결과 외상에 시달리는 환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폭력에 맞서 방어를 취하는 상태로 산다. 몸에 감각이 아예 없어져 살아 있는 기분 자체를 느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타인과 관계를 맺고 즐거움을 느끼고 미래를 계획하는 등의 능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압도적으로 짓눌린 경험이 파편적 기억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뇌를 근본적으로 뒤흔든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저자가 환자 개개인이 진심으로 몸과 마음의 균형과 평화를 찾기를 바라며 치료하는 모습이다. 또 하나 인상 깊은 대목은, 아동 학대 희생자들을 새로운 정신 장애 진단 목록에 넣고자 애쓴 점이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양육자에게 충성을 다하도록 정해진 관계이기에, 학대를 당하더라도 가족을 버리지 못하며 성인으로 자란 뒤에도 아동기 트라우마로 고통받는다. 요가나 호흡법, 연극 치료 등 전통적인 의학적 방식에서 벗어난 치료법을 소개하며 저자는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을 통해 치유를 찾자고 말한다.
평화로 가는 길
“환자들의 내면에 세상에 대한 지도가 다시 형성되도록 돕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