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증언들>과 함께 2019년 부커상을 수상했다. 부커상을 수상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한국에 소개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거나, 높은 확률로 아예 소개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는 이 소설은, 2020년 즈음의 페미니즘을 ‘하나의 목소리’로 부르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걸작이다.
페미니즘에도 주류와 비주류의 목소리가 존재하며, 여성이라고 모두 의견을 같이하지는 않으며, 때로 갈등하고 마찰한다. 흔히 페미니즘을 명명하고 운동을 시작하고 책(지금은 고전이라고 불리는)을 쓴 백인 여성들의 이야기가 주목받았다면,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범주로 부차적으로 언급되던(페미니즘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비백인들의 페미니즘은 말미에 큰 흐름만 언급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삶과 목소리를 담아낸다.
여러 연령대의 흑인 여성의 삶을 중첩시키는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세대와 계급, 성정체성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부각시키는데, 처한 상황이나 입장에 따라 여성들끼리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을 때로는 소름 끼칠 정도로 날카롭게 그려낸다. 페미니즘을 실천하려고 노력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페미니스트가 되라고 했을 때, 딸은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페미니스트가 되라고 기른 아이는 최근 들어 자기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도 않는다”는 한탄의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엄마가 그토록 원하던 대로 학교에서 읽고 쓰는 걸 배웠더라면 좋았을걸, 엄마도 책 읽는 걸 좋아했을 거야”라는 딸의 그리움도 있다. 세대와 시대, 대립과 갈등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챕터마다 목소리를 바꾸는 에바리스토의 문장이 강렬하다. 이 책의 어떤 여자들은 연결되어 있지만, 어떤 여자들은 연결되어 있지 않음에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부딪히고 중첩되는 목소리들이 주는 압도하는 힘을 느껴보시기를.
다른 사람들
그녀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남자 역을 왜 여자가 하면 안 되는지, 인종을 초월한 배역을 왜 그녀에게 시도조차 하지 않는지 말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녀가 연출자 강사에게 큰 소리로 묻는 동안 여학생을 포함한 다른 모든 학생은 그냥 조용히 있었다.(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