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기억될 2020년. 지난 11월 6일 강릉국제영화제(이하 강릉영화제)는 세계 각국의 영화제 수장 17인을 온오프라인으로 초청해 코로나19 시대 영화제의 의미와 당면과제에 대해 짚었다. 이날 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1부에서는 해외 영화제 집행위원장들이 생각하는 뉴노멀 시대의 영화제에 대한 고민과 방향성이 영상으로 발표되었다. 피어스 핸들링 전 토론토국제영화제(이하 토론토영화제) 조직위원장, 마르틴 테루안느 브줄국제아시아영화제 조직위원장, 마에다 슈 후쿠오카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 새뮤얼 하미에르 뉴욕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 사브리나 바라체티 우디네극동영화제 집행위원장, 윌프레드 웡 홍콩국제영화제(이하 홍콩영화제) 조직위원장, 조안 고 말레이시아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카를로 카트리안 베를린국제영화제(이하 베를린영화제) 예술감독, 키릴 라즐로고브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펠리페 알주르 카르타헤나콜롬비아국제영화제(이하 카르타헤나콜롬비아영화제) 예술감독, 히사마쓰 다케오 도쿄국제영화제(이하 도쿄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사전 녹화된 영상으로 생각을 전했다.
2부에서는 한국의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6인이 오프라인으로 토론을 이어갔다. 박광수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이하 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배창호 울주세계산악영화제(이하 울주산악영화제) 집행위원장, 신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 이준동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조성우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제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토론하고 김홍준 강릉영화제 예술감독이 사회를 맡았다.
기조발제를 맡은 피어스 핸들링 전 토론토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코로나19 사태 이후 ‘영화제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가’가 큰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김동호 강릉영화제 조직위원장은 11월 6일 ‘뉴노멀 시대의 영화제’란 주제로 강릉포럼의 장을 열며 이처럼 말했다. 실제로 올해 세계 각국 영화제들은 모두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다수의 사람들이 짧은 시간 동안 극장이란 어두운 공간에 모여 집중적으로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영화제의 본질적인 형식 자체가 코로나바이러스를 확산시킬 위험이 컸고 얼마간 중단되어야만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전조를 보이던 2월 말, 베를린영화제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중국발 확산세에 따라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건 아시아권 영화제들이었다. 4월에 열릴 예정이던 전주영화제는 4주 뒤로 개최 시기를 미루고 온오프라인 상영과 장기상영을 이어갔다. 마찬가지로 4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홍콩영화제는 개최 시기를 8월로 미뤘지만 결국 개최를 포기해야 했다. 그사이 바이러스가 유럽으로까지 번졌고, 칸국제영화제 역시 개최를 미루면서까지 물리적인 공간 안에서 영화제를 열고자 했으나 바이러스의 확산세는 꺾이지 않았다. 결국 칸국제영화제는 오프라인 개최를 취소하고 온라인으로 필름 마켓만 열었다.
영화제의 의미에 대한 어떤 질문
1부에서 기조발제를 맡은 피어스 핸들링 전 토론토영화제 조직위원장은 “지금은 최악의 상황인 듯하다”라면서 “영화제들도 영화제의 역할이 무엇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기”라고 현 상황을 정리했다. 그는 지난 37년간 토론토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 일하며 규모가 큰 영화제를 이끌어온 인물로, 국제영화제간의 동력을 잘 알고 있는 세계적인 영화인이다. “지금까지 영화제들은 쭉 뻗은 길을 달려왔다. 규모는 더욱 커지고 관객도 더욱 많아지고 동시에 점점 제도화됐다. 그 과정에서 영화제 시상식에 오를 영화들이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본래 영화제의 목적은 그게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영화제의 본래 목적은 영화를 매개로 한 다양한 목소리를 세계 무대에 소개하고 전세계 영화인들이 그 다양성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 하지만 영화제의 규모가 커지고 화제작만이 환영을 받는 지금의 현실을 보며 영화제의 본래 비전이 옅어지고 있다는 조심스런 분석을 내놨다. 그는 “영화제 주최측조차 ‘영화제 성공을 위해 우리가 했던 일들이 초점을 잃은 걸까’라고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행사의 크기를 줄이고 온라인 영화제를 개최하는 것이 답일까. 피어스 핸들링은 온라인 영화제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내비쳤다. “온라인 영화제나 온오프라인 결합 영화제는 단기적인 해결책”이라고 선을 그으면서 “영화제는 사람들이 단체로 함께 모여 무대 위 감독들과 현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주변 사람들과 토론하면서 즐기고, 표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서서 영화에 대한 사랑을 얘기하는 자리”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고 현재 오프라인 위주의 영화제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그는 “그동안의 영화제는 처음 온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신도가 돼야만 내부를 알 수 있는 종교 같았다”라며 온라인으로 새로운 관객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 영화제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경계 없이 영화를 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제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마켓 역시 온라인으로 열린다면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더 많은 약소 배급사에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영화계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영화를 보고 일대일 면담이나 온라인 회의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의 규모에 따라 세계 각지 영화제들은 역할이 양분돼 있다. 규모가 큰 국제영화제들은 인류의 영화사에 남을 영화를 선별해 수상하는 역할을 가장 주요하게 한다. 중간급 영화제들은 독립영화 분야에 기여하고, 독립 영화가 흥행할 수 있는 인지도를 쌓을 수 있는 바탕이 되어 다음 작품이 제작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때문에 규모와 관련 없이 모든 영화제가 큰 자원이다. 피어스 핸들링에 따르면 당분간 세계 영화제들은 규모와 관계 없이 모두 재정 압박을 받게 될 전망이다. 국가지원을 받는 영화제의 경우 코로나19 사태 수습을 위해 보건분야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다보니 영화제 지원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티켓을 통해 영화제 예산을 꾸리는 베니스영화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관객수를 줄여야 하거나 영화제를 찾는 관객이 줄어들면서 영화제 재정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는 중소 규모 영화제의 경우 합종연횡을 할 가능성이 있고, 대형 영화제들은 허리띠를 졸라매 어떻게든 영화사를 계속 써내려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조발제를 마치면서 피어스 핸들링은 이렇게 말했다. “많은 영화제가 그동안 규모를 키우는 데만 익숙해 있었다. 관객이 늘어나고 산업 부문이 커지고 더 많은 매체가 나왔다. 그리고 지금은 영화제들이 코로나19로 충격을 받고 겸손해지고 있다. 이제 영화제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영화제는 무엇을 해야 할지, 규모는 어느 정도 되어야 할지, 궁극적으로 영화제의 역할은 무엇일지.”
바통을 이어받은 마르틴 테루안느 브줄국제아시아영화제 조직위원장은 “관객이 영화제에 오는 건 영화를 보는 것뿐 아니라 현장 게스트를 만나고 소통하기 위해서”라며 앞선 주장에 동의했다. 그는 “공공위생과 사회적 위기라는 이유를 앞세워 문화를 중요하지 않다고 뒷전으로 미루면 안된다. 오히려 문화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자유와 숙고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카를로 카트리안 베를린영화제 예술감독은 현 상황에 대해 “유럽영화제들은 서로 연결돼 있다. 극장업계가 아주 힘들기 때문에 우리가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오프라인으로 영화제를 진행하고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제에 대한 일반적인 해결책은 없고 목표와 규모, 개최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는 견해를 내놨다.
펠리페 알주르 카르타헤나콜롬비아영화제 예술감독은 “영화와 영화제의 목적은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지식을 전파하며, 인류를 하나로 뭉쳐 협력하게 하는 데 있다”면서 “영화제는 우리가 쌓아온 지식을 공개하는 자리이고, 정보를 포함해 다양한 관점과 철학적 인식, 세상을 보는 관점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라고 정의했다. 올해 개최를 포기한 후쿠오카아시아영화제의 마에다 슈 집행위원장은 “관객과 감독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면 온라인 개최도 의미는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영화제는 아니라고 본다”면서 “컴퓨터로 영화를 보게 되면 작은 화면으로 볼 텐데 큰 화면으로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경험”이라고 선을 그었다.
사브리나 바라체티 우디네극동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온라인 영화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그는 “인터넷은 여태까지 악마 같은 존재였는데 이젠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코로나19 사태를 다루는 방식 자체를 이해하고, 영화제를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우디네극동영화제는 초청작과 영화 팬들을 위해 이탈리아 최대 인터넷 업체와 협력을 맺고 온라인으로 작품을 상영했다. 감독과는 화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44년 만에 개최를 취소한 영화제도 있다. 당초 3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홍콩영화제는 8월로 연기해 개최 기회를 모색했으나, 7월 2차 코로나19 대유행이 일어나면서 결국 개최를 취소해야 했다. 윌프레드 웡 홍콩영화제 조직위원장은 “대부분의 홍콩 극장이 문을 닫아 개최할 만한 공간이 없었다. 홍콩영화제는 몇 가지 실행을 했다. 먼저 선정작 리스트를 대중에 공개했다. 두 번째로는 온라인 활동이었다”라고 설명했다. 홍콩영화제는 신인을 발굴하는 파이어버드상과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온라인으로 시상했다. 팬데믹 상황이라도 신인 발굴을 멈춰선 안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홍콩영화제는 9월부터 11월까지 장기상영회도 이어갔다.
새뮤얼 하미에르 뉴욕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영화제는 500편, 400편 등 상영 규모로 판단하는 면이 있다. 한편으론 새로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나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찾는다. 하지만 새로운 이름을 발굴하지 못한게 사실”이라며 규모로 판단되는 영화제 생태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잠깐 멈춰서 되돌아보고 생각해볼 때다. 매년 영화제에 가보면 관객 연령대가 높다고 느낀다”라고 말했다. 히사마쓰 다케오 도쿄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재정적인 문제를 짚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영화제 지원을 멈춘 상태이고, 사기업 역시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다보니 후원을 줄이고 있다.
강릉국제영화제 포럼에 참여한 한국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6인과 사회자.
온라인 그 이상의 대안 찾아야
김홍준 강릉영화제 예술감독은 “그 난리를 겪어낸 (국내)영화제 집행위원장들을 모시고 각 영화제의 경험을 듣는 자리”라며 포럼의 2부를 열었다. 그는 한국의 영화제들이 어떻게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했고 어떤 노력을 했으며, 스스로 그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영화제 개최 순서대로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이준동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전주영화제는 팬데믹 상황에서 베를린영화제가 마지막으로 치러진 이후 처음 개최된 국제영화제였다. 선례가 전혀 없었다”고 지난 4월의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세계 2위로 중국 다음으로 많았다. 전주영화제측은 고민 끝에 5월 28일로 개최 시기를 4주 연기했다. 취소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준동 집행위원장은 “어떤 상황이든 영화제는 열려야 했다. 영화제가 가지는 역사성 때문이 아니라 영화제를 보고 영화를 만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대신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영화 제작진과 관객을 잇기 위해 온라인으로 상영하기로 했고, 심사위원들이 경쟁부문에 오른 작품들을 극장에서 관람한 후 수상작을 선정해야 한다. 그리고 관객에게도 극장에서 볼 기회를 주기 위해 전주와 서울에서 9월 20일까지 장기상영을 진행했다. 이준동 집행위원장은 온라인 상영에 대해 “불법복제 때문에 초청작의 20% 정도만 온라인 상영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50%가 동의했다. 어떤 식으로든지 관객과 만나고 싶어 하는 감독들의 의지가 대단하다고 느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영화진흥위원회가 나서서 온라인 영화제를 위한 플랫폼을 주도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는 의견까지 보탰다.
신철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내년 영화제 계획에 대해 “스탭들에게 온라인 예산만 짜라고 이야기한다. 10억여원을 오프라인 개최 준비로 잡았다가 못 쓰게 되면 큰일이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못 쓰는 것”이라며 “온라인 중심으로만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영화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극장 중심으로 영화의 가능성과 한계가 규정돼왔다”라고 주장했다. 신철 집행위원장은 “기술은 앞서가는데 영화란 매체는 어두운 극장에서 2시간 동안 같이 보는 것이라는 생각에 갇혀 있지 않은가. 기술적 변화를 이루고 진전을 이루는 상황에서 영화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바로 뒤이어 발언한 조성우 제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신철 집행위원장과는 생각이 정반대다. 온라인으로 영화를 볼 때와 오프라인으로 극장에서 볼 때 관객의 감동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제천영화제의 방점은 특별한 공간과 시간이다. 축제란 특별한 시간과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관객의 특별한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제작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음악영화제의 정체성상 영화음악을 잘 감상할 수 있는 극장이란 공간이 중요했기 때문에 나온 발언으로 보인다. 제천영화제는 OTT를 통한 온라인 상영, 영화 제작 지원 사업, 영화음악인 교육 프로그램을 세 가지 트랙으로 올해 영화제를 치렀다. 그는 “특정 기간에 영화를 발굴하는 게 영화제다. 제천은 시간과 공간에 집중하는 영화제로 갈 것이다”라며 오프라인 강화의 의지를 보였다.
개최 시기에 있어 흔들림 없이 열린 영화제도 있다. 여성영화제는 9월 10일부터 20일까지 예정대로 개최됐다. 8월 15일 광화문 집회 당시 많은 사람이 운집하면서 코로나19가 재유행하던 시기였다. 박광수 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스크린에 걸리기 어려운 여성영화를 많이 상영하고 여성감독을 지원하고 교육을 통해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게 중요하다. 개막작은 통상 1천명을 모시고 야외에서 상영했는데 최소인원을 모시되 상영 규모를 줄이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올해 여성영화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쳐 있는 여성 영화인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1분 내외의 단편을 만든 50인의 창작자에게 10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역대 가장 많은 작품이 출품됐으며, 이들의 단편을 묶어 개막작으로 선정했다. 박광수 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로 다양한 활동이 차단되면서 예산의 상당 부분을 여성 영화인 지원에 썼다. 그 결과 역대로 많은 지원금을 지급했고 역대 가장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낸 영화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영화제들이 공통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년에는 영화제 집행위원장들의 기구가 만들어져서 공동의 목소리를 내고, 한국 영화산업 전체에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기구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올해 25회째를 맞은 부산영화제의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이전의 위기 상황들을 떠올렸다. 그는 “25년 역사 동안 경제 위기와 보건 위기가 되풀이해서 나타났고 그때마다 영화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IMF 사태, 9·11 테러, 아시아의 사스 발병과 같은 경제 위기와 보건 위기가 있었다. 경제 위기와 보건 위기가 결합된 최악의 상황이 바로 코로나19사태”라고 설명했다. 부산영화제와 같이 규모가 큰 영화제는 방역 예산이 큰 문제였다. “규모를 감안할 때 방역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예산이 10억원 이상 쉽게 늘어났다. 5억원 미만으로 어떻게 방역을 할까 고민이 많았다.” 문제는 끝이 아니었다. 방역을 철저히 하는 가운데 오프라인 영화제를 연다 하더라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면서 관객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영화 저널리스트나 평론가의 영화제 참여가 거의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전양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초청작은 좋은 관객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영화 저널리스트나 평론가로부터 좋은 리뷰를 받으면 6개월 후에 일반 개봉의 길이 열리는데, 영화평론가나 영화 저널리스트 참여가 배제되면 영화제가 창작자들에게 절반의 의미밖에 안된다. 이는 시급히 해결돼야 할 문제다”라고 설명했다. 개막 이틀 전, 영화의 전당에서 언론인만을 위한 프레스를 준비했지만, 이 역시 올해 상영작 중 극히 일부였다. “영화제가 평균의 9분의 1 수준인 2만 관객을 동원하고 끝났다. 상당히 안전했지만 재무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부산의 방식대로 오프라인 영화제를 했지만 적지 않은 문제점을 발견한 해였다.”
올해 4월 열릴 예정이었으나 10월로 개최 시기를 미룬 울주산악영화제는 자체 플랫폼을 구축해 온라인 영화제를 열고, 오프라인에서는 자동차 극장을 통한 비대면 상영을 이어갔다. 배창호 울주산악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자동차 극장 상영에 대해 “친환경으로 고성능 스피커를 양쪽으로 설치해서 자동차 시동을 끄고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언택트 시대에 가족끼리 프라이빗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반응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있다. 마스크를 벗고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축제의 장이 열리길 바란다”며 안전한 공간에서 개최될 미래의 영화제에 대한 염원을 밝혔다.
2시간에 걸친 포럼을 진행한 김홍준 강릉영화제 예술감독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영화제를 개최한 건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최초이지 않을까 싶다. 개별적인 영화제의 역량일 뿐만 아니라 영화 문화 전체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과격한 주장과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는데 치열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라는 인사말로 행사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