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승리호>가 처음으로 공개되던 날, 카카오페이지에 가입했다. 많은 영화인들로부터 올해 가장 기대되는 신작으로 거론되던 한국영화 프로젝트의 세계관을 웹툰으로 먼저 만난다는 기대감이 컸다. 무료로 공개된 에피소드만 가볍게 살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스크롤을 내렸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달가량의 연재 예정분을 결제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업데이트된 에피소드를 다 보고 나서도 헛헛한 마음은 가시지 않아(이래서 완결되지 않은 콘텐츠를 구독하는 건 위험하다), 플랫폼을 돌아다니며 각종 웹툰과 웹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날의 내가 몇 시간 만에 얼마만큼의 유료 콘텐츠를 결제했는지는 오프더레코드로 남겨두고 싶다. 웹콘텐츠에 중독되면 답이 없다는 지인의 말을 짧고 굵게 실감한 순간이었다.
국내 스토리텔링 콘텐츠 산업의 중추로 확실히 자리 잡은 웹소설과 웹툰의 강점은 독자로 하여금 다음 화를 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몰입의 기술을, 여타의 스토리텔링 매체보다 치열하게 갈고닦아왔다는 데 있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독자들과의 소통이 실시간으로 가능한 매체인 만큼 대중의 취향과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하고 연재 도중 작품의 방향을 수정할 수 있다는 점도 급변하는 이 시대에 최적화된 특성이다. 영상업계가 이러한 웹콘텐츠의 매력에 일찌감치 주목한 건 재론할 필요가 없을 만큼 잘 알려진 현상이나, 공룡 콘텐츠 플랫폼의 슈퍼 IP를 중심으로 웹소설, 웹툰,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이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는 한편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국내뿐 아니라 콘텐츠 산업의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K-스토리의 르네상스를 이끌며 영화, 드라마 산업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웹콘텐츠 산업의 현재를 조명한 이번 특집에서는 송경원, 조현나, 남선우, 김성훈 기자의 취재로 디지털 플랫폼에서 K-팝 스타급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웹툰, 웹소설 작가들의 인터뷰를 실었다. <스위트홈>의 김칸비·황영찬 작가, <사내맞선>의 해화 작가, <이미테이션>의 박경란 작가, <여신강림>의 야옹이 작가, <템빨>의 박새날 작가다. 이들 작품의 누적 조회수를 합치면 50억뷰가 훌쩍 넘는다. 주간 마감이라는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한 다섯 작가와의 만남은 그동안 언론 매체에서 쉽게 접할 수 없던 웹콘텐츠 제작 과정의 세부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스위트홈> <여신강림>(12월 9일 방영)의 경우 각각 넷플릭스와 tvN에서 머지않은 시기에 방영을 시작할 예정인데, 드라마를 기다리고 있던 팬이라면 주목할 만한 내용이 많다.
국내를 넘어 해외 무대에서도 뜨겁게 주목받고 있는 다섯 작가의 인터뷰를 읽으며 디지털 플랫폼에서 가장 활발하게 창작되고 소비되는 장르가 SF, 판타지, 로맨스라는 점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동안 기술적인 한계로, 또는 유의미한 수익 창출이 어렵다는 이유로 한국영화가 간과해왔던 이들 장르의 대중적인 부상이 향후 영화산업에 가져올 변화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