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위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최근 많은 영화인들로부터 공통적으로 듣는 말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 극장가는 코로나19로 인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통합전산망 집계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최저 관객수를 기록하며 큰 타격을 입었지만, 올여름 개봉작 <반도>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의 선전은 극장이 예년만큼의 성적은 아니더라도 서서히 회복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많은 이들에게 심어주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크게 증가한 8월 중순 이후, 한국 영화산업 안에서 체감되는 위기의식은 상반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한국영화 신작들의 OTT행 소식과 멀티플렉스의 감축 운영 발표, KT&G 영화사업 부문의 축소 및 폐지 논란과 같은 위기의 신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2020년 가을은 한국 영화산업을 지탱해왔던 시스템이 더이상 과거의 방식으로 유지될 수 없음을 명확하게 자각하게 한, 엄혹한 계절로 기억될 것 같다.
지난 10월 28일 수요일,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아트나인에서는 영화수입배급사협회와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2020 한국 영화산업 긴급진단 토론회’가 열렸다. 120여명의 산업 관계자들이 참석한 이번 토론회는 코로나19 이후 제작·배급·수입·상영·정책 등 한국 영화산업의 실무를 맡고 있는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공개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상생의 해법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리였다. 이번호 남선우 기자의 기획 기사에서 더욱 자세히 소개했지만, 영진위가 집계한 피해 실태의 구체적인 사례를 토론회 참석자들로부터 전해 듣고 나니 “(지금의 상황은) 위기라기보다 붕괴”라는 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의 표현이 과장된 수사가 아니라고 느낀다. 수많은 한국영화들이 예정된 시기에 개봉을 하지 못해 향후 1년 반에서 2년 정도의 라인업이 밀려 있고, 이 영화들이 극장 개봉 연기로 수익을 내지 못하니 당장 2021년에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었던 한국영화 프로젝트의 투자가 어려워 기약 없이 연기되는 등 극장에서 시작된 위기는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그러나 산업의 가장 어두운 측면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나온 자리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희망 또한 느꼈다. 토론회에서 주요하게 거론된 OTT 플랫폼의 수익 배분 문제, 극장 개봉작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이동할 시의 홀드백 문제, 영화발전기금의 운용 방식, 극장과 배급사, 제작사간의 수익 배분 문제는 그간 여러 주체들의 입장 차가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첨예한 사안들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이 문제들이 보다 긴급하고 심도 있게 논의된다면, 토론회에 참석한 정윤철 감독의 말대로 “(한국영화가) 미래의 글로벌 영화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느낀다. 현재의 위기가 미래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회가 되길 바라며, <씨네21> 또한 한국 영화산업의 다양한 플레이어들과 함께하는 담론의 장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P.S. 지난 8월 말 발행했던 1271호 크리스토퍼 놀란 스페셜 에디션의 후일담을 전해드리고 싶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으로부터 <씨네21>의 <테넷> 스페셜 에디션과 인터뷰를 인상 깊게 보았다는 소감을 전해 들었다. 호이터 판호이테마 촬영감독, 루드비그 예란손 음악감독 등 이번호에서 소개하는 <테넷> 주요 스탭들의 독점 인터뷰 또한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