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방청이 취미예요.” 영화라도 보는 기분으로 재판 방청을 다니던 어느 여자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교도관으로 일하게 된 그는 출근 전에 뒤숭숭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다시 재판 방청을 갔다가 다나카 유키노 사건을 접한다. 연립주택 화재 사건. 불에 탄 시신 세구가 나왔다. 임신 중이었던 이노우에 미카와 그의 쌍둥이 딸이 사망했다. 당일 저녁 체포된 사람이 바로 다나카 유키노였다. 애인이 변심해 새로 가정을 꾸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재판 과정을 통해 과거사가 천천히 끌려나온다.
<무죄의 죄>는 다나카 유키노를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으로 본 방화 사건의 진상을 보여준다. 책을 읽는 사람은 사건의 가장 바깥쪽에 존재하는, 사건과 무관한 사람이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사건에 대한 정보로 시작해 점점 사건 관련한 내밀한 이야기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무죄의 죄>는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고, 독자와 서점 관계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2017년에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2018년 7월 6일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와 간부 6명의 사형이 집행되는 등 일본에서는 사형제도가 적잖이 활발하게 집행되고 있는데 하야미 가즈마사는 사형제도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다시 묻는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 역시 사형제를 다루는 미스터리 소설인데 그 작품이 반전에 집중했다면 <무죄의 죄>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비극으로서의 힘이 좋다. 유키노는 17살 호스티스였던 어머니의 딸로, 사생아였다. 새아버지에게 학대당하고, 중학생 때는 불량서클에서 활동했으며, 10대 시절 내내 문제를 일으켰다. 세상 사람들이 단죄하기 좋은 이력을 가진 살인마처럼 보이지만, 그 시간을 하나씩 펼쳐보면 어떤 이야기를 알게 될까. <무죄의 죄>는 읽다보면 종종 무력해지고 슬퍼진다. 책을 덮고 오랫동안 생각하게 만든다.
마지막 날
아아, 그래. 이젠 내일을 살지 않아도 돼. 힘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로 오늘 모든 것을 잃었다.(2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