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코로나19가 퍼지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진 것 같다. 아이들이 학교에 매일 가지 않는 일상이 자연스럽고, 마스크와 거리두기가 당연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떠밀리듯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면, 인류 자체가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서 몇 천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의 이야기를 읽는 건 어떨까. 듀나 작가의 단편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은 바다를 떠다니는 거대군집 고래 위에서 생활하며 지구를 그리워하는 인간들을 그린다. 그곳에서도 전염병은 돌고, 사람들은 격리당하는 가운데 탈출을 꿈꾼다. SF 앤솔러지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는 ‘우리에겐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살펴보는 일이 무척 필요하고 또 어느 정도 가능해진 만큼 적절한 시점에 출간된 책이다. 2020년의 세상이 흔들리는 모습을 피부로 감지하듯 가까이 관찰하는 단편들이 있는가 하면 초월적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삼은 단편도 있다. 정소연 작가의 <미정의 상자>는 시간을 되돌리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전염병으로 인해 부서진 현실, 부서진 관계를 바라본다. 김이환 작가의 <그 상자>는 바이러스에 면역을 체득한 낯선 사람들이 가까워지는 이야기로, 역시 부서진 세계를 보수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이종산 작가의 <벌레 폭풍>은 앨프리드 히치콕의 <새>처럼 검은가시모기라는 벌레들이 폭풍처럼 달려들어 일상을 삼키는 세상을 그려내어 코로나19 시대를 비스듬히 마주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김초엽 작가의 <최후의 라이오니>는 폐허를 찾아 쓸 만한 자원들을 회수하는 로몬 종족의 이야기다. 복제를 통한 불멸에 성공한 종족이 갑자기 찾아든 죽음으로 공황 상태에 빠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인류도 한때 과학을 통한 장밋빛 미래를 기대했지만, 지금은 몇년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씁쓸한 현실. 동시에 우리는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는 깨달음. 시대의 우울과 불안을 잠시나마 떨쳐주는 것이 픽션의 힘이라는 사실을 확인해본다.
왜 SF인가
“멸망을 맞이한 세계를 목격하면, 그 멸망이 나에게도 들이닥치는 순간을 끊임없이 상상했다.”(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