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돈 편집부의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은 책의 크기며 무게부터 인상적이다. ‘1490~1990년생 예술가들이 빚은 찬란한 500년의 역사’를 담았다는 소개에 걸맞게 크고 묵직하다. 한장 한장 넘기다보면 400여명의 여성 작가들 작품에 어떤 공통점을 찾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상주의와 사실주의부터 추상표현주의까지 성 정체성과 인종에 대한 탐구부터 개념미술과 환경설치미술까지 사실상 미술사의 모든 주제가 담겨 있다.
오히려 공통점이 있다면, 여성 작가들의 삶에서 찾을 수 있다. 교육이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던 시절, 그림을 배워 작업하는 기회를 가지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콩스탕스 마리 샤르팡티에는 신고전주의 예술가 자크 루이 다비드 등에게 그림을 배웠는데, 그녀의 훌륭한 회화는 다비드의 것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1915년생 엘리자베스 캐틀렛은 카네기 공과대학의 우수 장학금 수여자로 선정되었으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취소당했다. 현대로 오면, 한참 활동한 후에야 인정받거나 아예 사후에 뒤늦게 조명받는 여성 작가들이 많다. 배우 메릴린 먼로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는 사진을 비롯하여 수많은 유명작을 남긴 사진가 이브 아널드는 1951년부터 유명 사진 에이전시 매그넘에서 활동했음에도 개인 사진전은 1980년대가 되어서야 열었다. 거대 거미 작품 <마망>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 또한 1982년 일흔살에 뉴욕 모마(MOMA)에서 뒤늦게 회고전을 열면서 명성을 얻었다.
소셜미디어가 여성 예술가들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로메인 브룩스의 자화상, 물방울무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 붓 터치가 부드러운 엘리자베스 페이턴의 초상화, 소설가이자 프로레슬러로 활동한 약력과 함께 누아르 이미지의 회화로 유명한 로절린 드렉슬러의 작품도 있다. 보따리 작업으로 유명한 김수자, 사진가 니키 S. 리 같은 한국의 여성 작가도 등장한다.
학생의 자격
가장 가치 있다고 평가되는 역사화를 그리려면 누드모델을 그리는 데생 수업이 필수적인데 여성들은 드로잉 수업에 참석하는 것마저 불가했기 때문에 위대함의 조건을 갖추기가 어려웠다.(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