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서 온화한 인상을 받았을 때, 그 이유를 떠올려보면 그림의 색채, 인물의 미소 띤 표정, 둥근 턱 모양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데즈먼드 모리스는 미술 작품이 관람객에게 어떠한 인상을 남겼다면 거기에 작품 속 인물의 포즈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인간이라는 종성을 ‘털 없는 원숭이’로 규정하고 본성과 진화 과정을 분석한 데즈먼드 모리스의 책 <털 없는 원숭이>는 진화생물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이번에는 인간의 포즈를 9가지로 나누어 미술 작품 속 자세들을 설명하고 그 뒤에 숨은 사실들까지 아울러 책으로 묶었다.
데즈먼드 모리스는 “나는 나의 예전 저서 <맨워칭>(1977)에서, 몸짓언어라는 주제를 소개하면서 우리가 말에만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인간의 행동을 연구할 때 훨씬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음을 말했다”며 새 책에서는 몸짓에 사회적인 기능이 있다고 설명한다.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도 참견 영상을 보면 매니저의 멀찌감치 떨어진 자세, 몸의 기울어짐 등이 상사 앞에서 차마 말로 꺼내지 못한 그의 본심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개인의 포즈는 그 한 사람만의 습관인데 모두에게 통용된다 할 수 있을까. 그것을 보편적인 포즈로 분석할 때 사회적 기능이 생긴다는 것이 동물학자이자 화가이기도 한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의 매력은 몸짓언어의 예시로 든 예술 작품 중 231개를 컬러로 수록한 데 있다. 지식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포즈’에 얽힌 사회적 사건과 연구 자료까지 예시로 들어 신뢰를 더한다. ‘꼿꼿한 자세’는 높은 지위를 과시하는 태도를 연상시킨다며, 하버드 대학교 연구진에 따르면 우리의 자세가 호르몬 농도, 특히 테스토스테론과 코르티솔의 농도에 영향을 미친다, 고 덧붙이는 식이다. 초상화로 역사 속 인물들의 얼굴을 확인함과 동시에 ‘해당 인물이 저런 자세를 취한 걸 보니 당대의 사회적 위치는 이러했을 거’라는 주석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몸의 메시지
그런 자세를 택했을 때의 위험을 보여주는 그림이 한점 있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걸작 <1808년 5월 3일>(1808)이다. 반도 전쟁 때 나폴레옹 군대에 맞선 스페인인들의 저항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의 초점은 흰 셔츠를 입은 남자에게 맞춰져 있다. 그는 두손을 높이 들어올리고 있다. 언뜻 보면 그의 몸짓언어는 앞에있는 총살 부대를 향해 항복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항복.” 그러나 이 행동에는 반항과 헛수고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동료의 대부분이 살해당해서 그의 발치에 쓰러져있고, 그는 자신이 다음 차례임을 알기 때문이다.(1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