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 작가들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작가와 나는 성장 배경도 다르건만 소설 속에는 내가 펼쳐진다. 이거 내 이야기인가? 내가 겪었던 일인가? <자두>의 화자는 번역 일을 하며 남편과 평화롭게 살고있다. 너무 신사다워 주위에서 로맨스그레이의 헌신이라 불리는 단정한 시아버지가 갑자기 병에 걸리며 그 평화가 깨진다. 염천에 시아버지 간병을 하며 둘은 지쳐가고 병원 소개로 전문 간병인을 고용한다. 간병인 황영옥씨는 출근 첫 날 시아버지의 침상을 둘러보더니 필요한 물품부터 상세하게 적어주며 전문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그리고 불면증을 앓고 거동만 불편하던 시아버지에게 섬망이 찾아오고 나는 시아버지와 남편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세계의 진면목에 대해 알게 된다. 황영옥씨는 ‘나와 남편’이 고용한 간병인이다. 우리와 저들로 세계를 나눈다면 ‘나’는 남편과 시아버지의 세계에 속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어떤 사건 이후 나를 이해하고 걱정하는 것은 영옥씨이며 그들은 나에게 적대적이거나 서운한 감정을 품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 역시 아버지가 2년째 장기 입원 중이고 여러 명의 간병인이 내 아버지를 담당했다. 오래 누워 있는 환자의 마른 발목, 그 공간의 냄새와 분위기, 가면이 벗겨져 원래 표정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여럿 봤다. 그리고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장례식 후 어느 밤에, 술 취한 작은아빠가 엄마에게 ‘형수 때문’이라는 가당치 않은 말을 꺼내 엄마가 숨죽여 우는 소리를 들은 경험도 있다. 소설 속 시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남편의 먼 친척 형이 ‘나’에게 가하는 공격, 그리고 그 옆에서 가담자의 표정을 한 남편. 어떤 사랑은 가부장제에서 한 쪽이 희생해야만 유지가 되는 것이다. <자두>에서 타인의 마음을 더듬어보려 노력하고 분위기를 감지해 사고를 막는 것은 고용인, 피고용인으로 만난 여성들뿐이다. 강화길의 <음복>의 남편이 그랬듯, 무지하고 순수할 수 있는 것도 사회적 특권임을 다시금 일깨우는 소설이다.
날것의 감정
타인이 불쑥 내비친 날것의 감정을 마주쳤을때만큼 당혹스런 순간이 또 있을까요? 그렇지만 왜 울었냐고 한번쯤은 물어볼걸 그랬습니다. 살다보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는가 하면, 모든 말을 다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지 않던가요.(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