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근화의 산문집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는 읽기와 삶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다. 그의 시 <창백한 푸른 점>의 “날 좀 사랑해줄래/ 드문드문 어두운 것도 같지만/ 크게 웃었다가 긴 침묵에 쌓이는 사람들과 함께/ 내가 먼저 아침을 맞이할게/ 널 위해 긴 문장을 썼다가 지웠지만/ 지구의 아들딸들을 위해/ 오늘은 시금치를 삶을게” 같은 언어의 살뜰함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혹은 아직 이근화를 모르는 이들에게도 유혹적인 책이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쓴 글을 묶었다는데, 여러 작가들의 글을 읽어가는 구성이다. 필연적으로, 책과 읽는 행위에 대한 이근화식 주석이 된다. 이근화가 한나 아렌트를 인용하는 방식은 이렇다. “정치적 인간으로서 이해관계가 연관된 세계에 대해 논할 때 ‘협상 테이블에 사랑을 가져온다면, 직설적으로 말해 나는 그런 행동은 치명적인 짓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이다.” 시인이 생각하는 비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일종의 자리바꿈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존재감을, 삶의 비애를 다른 대상에 비유해놓고 보면 빠져 죽을 것만 같다가도 헛웃음이 나고 슬며시 인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코로나19 때문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가는 대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곳곳에 있다. 엄마가 원고 쓸 시간을 벌기 위해 아이들에게 이면지와 연필을 쥐여준 결과 탄생한 재미있는 그림들. “나는 매일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데 애들 그림 속의 엄마는 늘 활짝 웃고 있다.” 그리고 돌아본 자신의 성장과정은, 다른 틀은 고려해보지 않은 지루하고 딱딱한 삶이었다고. 살아가는 나날이 다큐멘터리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세 딸들>과 교차할 때, 예술과 가족, 사랑 모두는 곁을 내어주는 일이 된다.
“책을 덮고 책 바깥에서 삶을 구하라는 네루다의 시야말로 명백하게 책을 기리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거리를 걸으며 인생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기 위해 책을 덮어야 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책을 여는 어떤 순간에 대한 필요성을 일깨운다.” 허무와 싸우기, 세계를 지속 가능한 곳으로 만들기, 책이 스타일이자 상품이 된 세상에서 시를 읽어주는 여자로 사는 일. 이 세계 여성들의 삶을 기웃대는 방식으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이근화의 산문은, 느리게 흐르는 깊은 물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 발을 담그고 시간을 잊게 만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