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K팝 콘텐츠를 즐겨 보는 편이다. 즐겁고자 보는 것이니 늘 즐겁기만 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K팝 콘텐츠를 소비하는것은 때로 불편하고, 죄책감을 자극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무례한 중년 남자만큼 싫지만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불편한 콘텐츠가 세 가지 있다.
첫째는 애교(aegyo)다. 애교 콘텐츠란 아이돌에게 아기 혹은 어린이 흉내를 내도록 하는 것으로, “띠드버거(치즈버거)”,“기싱꿍꼬또(귀신 꿈 꿨어)”, “귀요미송” 따위가 있다. 아기 흉내라고는 했지만 진짜 영유아의 모습을 따라하는 것은 아니다. 귀여운 매력을 보이는 것과도 다르다. “애교 하나 해봐”라는 말이 요구하는 것은 정형화된 동작이다. 10대 후반부터 성인에 이르는 연예인들이 발음을 뭉개고 볼에 공기를 빵빵하게 채우거나 입술을 내밀며 한껏 과장된 표정을 짓는 등의 이상한 표현을 한다. 나는 이 애교 콘텐츠가 매우 불편하다. 애교 콘텐츠의 정형적 요소가 부정확한 발음, 사지를 가누는 법을 배울 때의 어색한 동작, 상상력이 풍부하고 불안할 때의 공포심 같은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 즉 보호를 받아야 하는 영유아나 어린이가 성장하면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행동에서 출발해 이를 과장하고 우스꽝스러운 무언가로 변형해 오락적 요소로 삼는다는 점은 불안하기까지 하다.
둘째는 ‘고요 속의 외침’이다. 귀를 막고 서로의 입을 보고 입술을 읽어 말을 전달하는 것이다. 멤버 수가 많은 아이돌 그룹에서 멤버들끼리 이 게임을 하는 자체 콘텐츠가 상당히 많다. 키워드와 멤버만 있으면 되니 준비도 쉬운 편이다. 그러나 순독은 청각장애인들의 의사소통 방법 중 하나이다. 고요 속의 외침은 참가자들의 과장된 표현, 말을 소리 없이 전달하며 생기는 왜곡 등을 재미의 요소로 삼는 것 같지만, 나는 아무래도 이 콘텐츠는 그 자체로 장애 차별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활에 필수적인 행동을 희화화해 웃음거리로 소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것이 계속 만들어지고, 계속 재미있는 일처럼 여겨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셋째는 외국인 멤버의 한국어에 대한 코멘트다. 요즈음 K팝 아이돌 그룹에는 외국인 멤버가 상당히 많다. 이들은 타국인 한국에서 한국어를 하며 일한다. 외국에서 외국어로 일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인들 사이에서 태연히 행동하는 것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서툰 언어로 말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외국인 멤버들의 한국어 발음이 꼬이거나, 한국어 단어를 못 알아들을 때 주변인들이 폭소하거나 이를 따라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런 반응에는 대체로 악의가 없다. 주변인들은 그저 즐거워하고 말하는 이를 귀여워한다. 심지어 진심으로 사랑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악의가 없다고 해서 차별이 무해할 수는 없다. 그저 일상적인 차별의 현장이 날것 그대로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이것도 저것도 불편한 내가 안 보면 될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래도 나는, 위 세 가지 콘텐츠를 K팝에서 치우는 것은 취향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