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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교: 디텐션' 존 쉬 감독 - 대만 역사에 기반한, 대담한 공포영화
조현나 2020-08-20

사진제공 찬란

‘당신은 잊은 것입니까, 아니면 기억해내기가 두려운 것입니까?’ 동명의 게임을 영화화한 <반교: 디텐션>은, 웨이중팅(증경화)과 팡루이신(왕정)을 통해 계엄령 시기의 대만을 그대로 재현한 공포영화다. 장 선생님(부맹백)과 학교에서 몰래 금서를 읽던 이들은 결국 감옥으로 끌려가고, 잔혹한 고문을 받던 웨이중팅은 폐쇄된 학교에 갇히는 악몽을 반복해서 꾼다. 연출을 맡은 존 쉬 감독은 대만 관객이 영화를 통해 묻어둔 과거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기를, 그것이 트라우마 치료의 첫 단계가 되길 바란다고 전한다. 그의 바람에 관객은 뜨겁게 화답했고, <반교: 디텐션>은 지난해 금마장영화제에서 5관왕을, 2020년 타이베이영화제에서 6관왕을 영예를 안았다. 코미디, 풍자 위주의 작품을 주로 제작해온 존 쉬 감독의 발걸음이 어떻게 <반교: 디텐션>으로 향하게 됐는지, 감독과 서면으로 나눈 대화를 전한다

-원작 게임의 어떤 매력에 끌렸나.

=10살 무렵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반교: 디텐션> 이전에 만든 단편영화들도 대부분 디지털 세계나 게임 문화를 다룬 것들이었다. 어드벤처 게임은 내가 좋아하는 게임 장르 중 하나여서, 한 대만 게임사가 60년대 대만의 역사를 기반으로 한 호러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큰 호기심이 일었다. 게임 출시일에 바로 게임을 했고 곧바로 게임에 깊이 빠져들었다. 대만영화계의 지인들에게 “누군가는 이 게임의 영화화를 정말 고려해봐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고 다녔는데, 결과적으로 내가 그 일을 하게 됐다. 이러한 기회가 와서 굉장히 감사할 따름이다.

-게임과 영화의 진행 방식이 다르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흩어진 단서들을 모아 최종적으로 사건의 전모를 알아내는 방식이라면, 영화는 순차적으로 사건을 보여주는 방식을 취한다.

=게임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선 인물에게 해결해야 할 난제, 사건의 반전, 변화와 같은 것들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전반적인 서사를 재구성했다. 그렇게 변화를 주는 한편 원작 게임의 서사가 가진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전반적인 각색 과정에서 그 점이 가장 어려웠고 동시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1960년대 대만의 군사독재 시기가 영화의 주된 배경이다. 세심한 고증이 필요했을 텐데 주로 어떤 자료들을 참조했나.

=계엄령 시기를 다룬 책을 많이 읽고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비정성시> 등의 영화도 봤다. 출연배우들과 함께 백색테러의 생존자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들은 생생한 이야기는 나와 배우들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고, 그 당시 분위기를 재현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다.

-2D 횡스크롤 어드벤처 게임인 <반교: 디텐션>을 실사화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시각디자인 측면에서 확실히 게임이 영화보다 더 연극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미술적인 부분과 상징적인 장면들을 3차원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데 주력했다. 프로덕션 디자인팀이 음산한 분위기의 학교를 생생하게 만들어내는 데에 많은 공을 들였다.

-공포와 분노를 이미지화한 방식이 눈에 띈다. 가령 ‘거대한 귀신’은 학생들을 쫓는 교관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팡루이신의 그림자’의 형체도 영화에서 더 구체화됐다.

=정치·역사적인 주제에 맞춰 디자인에 변화를 주되, 도교적인 영향이 크게 작용하는 게임의 설정을 그대로 반영했다. 등을 든 거대한 귀신의 경우 도교의 귀신 차사와 게임 초반에 잠깐 등장한 헌병대 모자를 쓴 귀신을 하나로 합친 것이다. 그래서 게임보다 표현이 더 풍부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일부 장면들은 현재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팡루이신이 혼자 늦은 밤 교실에서 깨어나는 신은 마치 방금 게임에 접속한 것처럼 느껴진다.

=팡루이신이 과거의 끔찍한 기억을 조금씩 떠올리게 되는 것이 원작의 주요 서사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다시 시작할 때마다 팡루이신의 입장에선 그 기억들을 매번 다시 떠올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점이 내러티브에 담긴 주요한 주제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출발점으로 그러한 방법을 썼다.

-게임 속 캐릭터들과 왕정, 증경화 배우의 싱크로율이 높다는 평이 많았다.

=두 사람 모두 수백 대 일의 치열한 경쟁을 뚫은 배우들이다. 팡루이신을 연기한 배우 왕정은 굉장히 섬세한 면을 지녔고, 인터뷰 두번 만에 왕정 배우가 가진 내면의 열망을 스크린상에서 폭발시킬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반대로 증경화 배우는 영화에 출연한 경험이 전혀 없는 신인이었다. 그가 가진 순수함, 순진함이 얽히고설킨 일련의 사건을 겪어나가는 웨이중팅을 연기하기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웨이중팅의 비중을 더 키운 이유는 뭔가.

=게임의 구조를 보면 웨이중팅의 시점으로 시작한 후, 혼자 살아남은 채 노인이 된 웨이중팅의 시점으로 끝난다. 게임을 다시 해보면서 “이 이야기는 팡루이신에 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고통받은 이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각색하는 과정에서 웨이중팅의 서사를 더했고, 그렇게 하니 사건 전체를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게 되더라.

-“잊지 않을게”라는 메시지가 반복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겠다.

=게임에서도 한 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당신은 잊은 것입니까, 아니면 기억해내기가 두려운 것입니까?’ 영화의 카피 문구로도 사용된 대사다. 나는 이 문구가 이 이야기의 주제라고 생각한다. 대만 사람들에게 백색테러 시기의 역사는 치유해야 할 집단 트라우마와 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볼 엄두는 못 낸다. 상처를 치료하고 싶지만 상처가 있다는 건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게임이든 영화든 ‘디텐션’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이를 통해 트라우마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과정이, 상처를 치료하기 전 먼저 상처를 마주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단계라고 봤다.

-듣고 보니 감옥에 남은 웨이중팅에게 “살아남아 자유를 얻으라”던 장 선생님의 대사가 더 깊게 와닿는다.

=당시의 한 생존자에게 들었는데, 수감자 중에 사형장으로 가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다른 수감자들이 이별 노래를 부르면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들은 슬퍼하기보다는 좀더 평온한 방식으로 죽음을 대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내게는 그 점이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왔다. 장 선생님과 웨이중팅이 헤어지는 장면을 촬영할 때 장 선생님은 현실을 이미 받아들이고 떠날 준비가 됐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장 선생님 역의 부맹백 배우가 연기를 정말 잘해서 촬영할 때 많이 울었다.

-영화 속 대만의 상황은 과거 한국과도 오버랩된다. 독재정권 시절의 고통을 아는 이들이라면, 국가를 불문하고 공감할 지점이 많은 작품이다.

=대만에서 80년대 민주화운동과 사회의 부조리를 다룬 한국영화들을 많이 봐왔다. 정치적 사건들과 이에 대항하는 운동들을 영화가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시선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실 대만에는 이런 영화가 거의 없다.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서 대담한 선택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교: 디텐션>을 제작한 데에는 여러 의도가 있지만 특히 대만의 영화 제작자로서 우리가 하지 않으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이 이야기를 충실히 전달하지 못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담한 한국영화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60년대 대만에서 벌어진 일을 한국의 관객이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물론 공포영화로, 게임을 각색한 영화로도 즐겨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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