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은 종종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건넨다. “너도 이제 슬슬 제대로 된 일을 시작해야지.”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지도 이제 10년이 넘어가는데 어르신들은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의 쓸모를 궁금해한다. 매번 되돌아오는 질문을 마주하며 시간이 갈수록 곱씹게 된다. 영화비평을 ‘제대로’ 한다는 건 어떤 걸까.
이건 정답을 찾는 작업이 아니라는 걸 진즉에 간파한 사람이 있다. 1980년 롤랑 바르트는 <밝은 방>을 통해 체험으로서의 영화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밝은 방>은 영화의 형식과 이론 바깥에서 영화를 사유한다. 당연히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감상들이 주를 이뤘다. 장 루이 셰페르의 <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남자>는 그 기획의 두 번째 결과물이자 마지막 책이다(롤랑 바르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이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1970년대 프랑스영화계는 비평가들의 각축장이었다. 이들은 기호학, 포스트 구조주의, 정신분석학 등 각자의 잣대를 무기로 영화의 물적 특성과 구조를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셰페르는 “나는 어떤 본질적인 이야길 말하진 못할 것 같다. 영화는 나의 본업이 아니기 때문이다”며 선을 긋고 시작한다. <밝은 방>에서 롤랑 바르트가 사진을 경유하여 이미지를 탐색했듯이 셰페르는 ‘영화를 본다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영화를 말한다. 이것은 관객의 영화적 체험에 대한 사유다.
지금은 당연한 것이 되었지만 영화는 관객의 감상을 통해 각각의 체험으로 완성된다. 모두에겐 각자의 영화가 있다. 셰페르는 찰나의 기억 너머로 사라지는 영화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인 후 자신 주변의 체험과 감각들에 집중했다. 셰페르가 말하는 ‘평범한 사람’은 평균화된 대중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사회(혹은 영화)가 요구하는 결정된 세계로부터멀어지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이들이다. 주어진 것, 시키는 것, 대중적인 것으로부터 탈주하여 자신의 몸, 감각, 감상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보다 내가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집중하는 사람들. 나에게서 시작되는 나를 위한 체험들. 영화비평이 무엇을 위한 일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적어도 영화를 말하는 일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어렴풋이 답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