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명실공히 디스토피아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이동환 목사를 교회의 재판위원회에 회부했다. 교회 사건에는 교회 내부 규정이 적용되는데, 교회 재판위원회는 교인을 ‘처벌’할 수 있다. 가장 무거운 처벌은 출교인데, 공동체에서 한 사람을 죄인으로 선포하며 내보내는 것이다. 이동환 목사는 성소수자 문제 외에도 노동현장에서 자주 연대해온 현장의 종교인이다. 탄원서를 쓰자는 링크가 와서 이름을 썼다. 탄원서에는 하고 싶은 말을 덧붙이는 칸이 있었다. 나는 “응원하고 연대하고 지지합니다”라고 썼다. 언제나 진심이지만, 날마다 새로운 사건이 있고 새로운 좌절이 있는 이 디스토피아에서, 이 말은 이제 자동 출력 문구나 다름없다.
어느 단체의 성소수자 난민 지원 모금이 마감을 임박해서도 목표액을 채우지 못했다. 나는 허겁지겁 추가 기부금을 냈다. 목표액이 높지 않았는데도 마지막까지 아슬아슬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여기도 한마디를 하는 칸이 있었다. 내가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기부할 때 썼던 한마디가 아직도 다음 페이지로 밀려가지 못한 채였다. 나는 이번에는 아무말도 쓰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성폭행 가해자 안희정이 상을 치르느라 사회에 잠시 나왔다.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정치인과 유명인들이 조화를 보내고 조문을 했다. 코로나19 시대에 하지 말라는 악수도 하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이어 서울시장이 사망했다. 성폭력 피해자가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 실종되었다가 청와대가 보이는 곳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코로나19 시대에 지양하라던 장례가 서울 한복판에서 대규모로 치러졌고, 주말 내내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루어지지 않는 장례식 현장이 계속 보도되었다. 나는 한 시민단체로부터 시민장례위원 모집 공지를 받고, 전체 공지로 장례위원을 모집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항의 전화를 했다. 언제나 과로 중인 헌신적인 동지에게 “이런 전화로 시간을 빼앗아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항의를 했다. 모든 일에 미안했고, 끔찍한 기분이었다.
그다음에는 한 소설가가 지인 편집자의 내밀한 사생활이 실린 카카오톡을 동의 없이 소설에 그대로 실었고 출판사들은 이를 알면서도 독자들에게 공지하지 않은 문제가 공론화되었다. 날마다 SNS에 새 사진을 올리던, 문단 밖의 문제를 규탄하던, 페미니즘이니 여성 서사니 하는 말로 주목받던, 이 일을 이미 알고 있던 작가들 거의 모두가 침묵했다.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애매한 말조차 보태지 않았다. 문단 권력을 향한 철벽같은 침묵의 충성 맹세와 피해자에 대한 철저한 외면을 지켜보며 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나는 이 침묵을 선해할 길을 찾고 있다. 내일은 또 다른 사건이 있으리라. 나는 아마 또 어딘가에 연명하고, 연대하고, 지지한다는 다섯 글자를 일상의 파편 속에서 남은 힘을 짜내어 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실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읽고 싶지 않다. 이 디스토피아에서 작가로 사는 것이, 고통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