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책은 예기치 못하게 어떤 날 필요한 사람을 찾아오는 것일까. 손보미 작가가 2020년 7월 둘쨋주 일주일 동안 일어난 연이은 뉴스들을 내다보고 장편 연재를 시작했을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신작 소설 <작은 동네>의 문장들은 지금 한국의 여자들에게 허투루 넘길 수 없는 것들이다. 딸이 방과 후 친구들과 단소 연습을 하는 것조차 허락지 않으며, 매일 학교에 데리러 오는 엄마. 아이는 그런 엄마 때문에 교실에서 소외된다 여기고 아빠 역시 “네 엄마는 너의 안전에 과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작은 동네에 실종된 소녀에 대한 소문이 떠돌자 다른 친구 하나가 “나도 모르는 아저씨들 차에 올라탔는데 아저씨들이 바지 속에 손을 넣고 있었고 느낌이 이상해 도망쳤다” 소곤댄다.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야. 사랑하는 우리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딸을 껴안으며 속삭이는 엄마가 과민하다고, 이제 우리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른이 된 여자는 남편의 회사 파티에서 배우 윤이소를 여러 번 마주친다. 한때 빛났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윤이소를 걱정하는 주인공에게 남편은 “그 여자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여자야. 꼬리 아홉개 달린 여우라”며 윤이소에 대해 떠든다. 엄마의 죽음, 행방이 묘연한 여배우,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 등 연이은 사건 앞에서 주인공은 어릴 때 숲에 숨어 살던 어떤 여자를 떠올린다. 유력 정치인에 의해 작은 동네에 숨겨진 여자, 엄마의 친구였고 동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던 여자. 엄마는 그 여자를 품에 안고 속삭였다. “당신은 다시 살 수 있어요. 몇번이나 다시 살 수 있어요.” 길 잃은 소녀의 깨진 무릎에 약을 발라주는 여자, 그런 여자의 유일한 친구가 된 모녀. 작은 동네에서 오직 여자만이 다른 여자에게 손을 내밀고 그를 품에 안는다. 당신은 살아야 한다고 우리가 옆에 있겠다고 어두운 숲을 건너 여자에게 가는 그녀들을 보며 우리도 속삭인다. 혼자가 아니에요. 당신 옆에 우리가 있어요.
선택이 삶이 된다면
하지만 우리의 선택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이를테면 그 기사 - “그 시절 제 누나의 사정을 제보해주실 분들을 찾고 싶습니다”라고 인터뷰를 한- 를 읽었으면서도 그녀의 남동생에게 연락하지 않은 어머니의 선택이 바로 어머니의 삶이라는 것을 어머니 자신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머니의 딸인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내린 수많은 결정을, 내가 한 수많은 선택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중략) 어머니는 숲속에 살던, 그 분별력을 잃어버린 여자를 사랑했는가? 아니면 혐오했는가?(267~2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