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생명을 모방, 증강, 능가하는 방법으로서의 로봇이라는 아이디어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술이 뒷받침되기 전, 그것도 그리스 신화에서 인공 생명 만들기와 자연 복제에 대한 온갖 아이디어가 탐색되었다는 주장이 <신과 로봇>이다. 스탠퍼드대학에서 고전 역사와 과학의 관계를 연구하는 에이드리엔 메이어는 이른바 과학과 인문학이 어떻게 협업할 수 있는지의 사례를 이 책을 통해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진 존재들은 이아손과 아르고 원정대, 정동 로봇 탈로스, 기술 마녀 메데이아, 천재 공예가 다이달로스, 불의 운반자 프로메테우스 등이 있으며, 인공 생명을 창조하려는 (시대를 초월한) 충동의 초기 표현을 담아내는 그릇이 바로 신화다.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첫 단추는 바로 상상력이다. 가능한 테두리 내에서 반복하지 않고 없는 것을 만들어보는 일, 상상 속의 존재를 이야기 속에 구현하는 일. 그러니 <신과 로봇>은 그리스 신화의 흥미진진한 독해법이다. 노화를 막고 가능한 한 건강한 몸을 유지하거나, 혹은 아예 노인의 신체를 새것으로 바꾸어 작동하게 하는 상상을 메데이아가 마법과 약물을 동원해 아이손의 젊음을 되찾은 이야기와 연관짓는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의 사용법을 알려주는 인류의 후원자였는데, 이후 그의 선물은 언어, 글쓰기, 수학, 의학, 농업, 가축 길들이기, 광업, 기술, 과학 등 문명의 거의 모든 기술로 확대되어 언급된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는 흙과 물(또는 눈물)을 섞어 진흙으로 최초의 남자와 여자의 형상을 빚었다. 조각상을 만든 뒤 아프로디테에게 기원해 그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게 한 피그말리온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이것은 인공 생명과의 로맨스 이야기이며, 낭만적 사랑 이야기로 미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서양 역사 최초의 여성 안드로이드 섹스 파트너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은가? <신과 로봇>은 그리스 신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만든다. 재미는 기본이다.
판도라는 어떤 존재인가
<블레이드 러너>에서 순식간에 성인으로 만들어진 복제 인간들처럼, 판도라도 부모가 없고 어린 시절도 없으며, 역사도 추억도 감정의 깊이도 없고, 자기 정체성이나 영혼도 없다. 그녀는 이따금 ‘최초의 여성’으로 간주되지만, 번식을 하지 않고 나이도 먹지 않으며 죽지도 않는다.(2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