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나태하게 살아도 됐을 것이다.” 여러 이유로 자신을 몰아붙이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면 마음에 담아둘 문장이다. 주인공 유원은 어린 시절 화재를 겪었다. 11층 아파트에 큰불이 난 것이다. 유원의 언니는 유원을 이불에 싸서 밖으로 던지고, 운 좋게 한 사내가 유원을 받아낸다. 이후 유원은 ‘11층에서 떨어졌는데 멀쩡한 이불 아이’로 불리게 된다. 화재 자료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떠돌고 사람들은 호기심과 정의감에 한마디씩 댓글을 단다.
“아저씨를 망가뜨려 놓은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다.” 유원을 구한 아저씨는 크게 다쳤다. 사업도 계속 실패했다. 그는 유원의 집에 언제든 찾아와 밥을 얻어먹고, 잠을 자고, 유원의 부모에게 돈을 빌린다. 그렇게 자신이 유원의 생명을 살린 사람임을 언제고 확인시킨다. 누군가의 삶을 희생한 덕분에 살아났다는 사실 앞에 유원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제대로 자라지 않으면 안된다고 스스로 다그친다. 어느 날, 유원은 학교 옥상에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서 살아가는 듯한 친구 수현을 만난다.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을 사람은 다 예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수현의 직설적인 말에 유원은 힘을 내기 시작한다.
성장이란 뭘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마음이 괴로운 이유가 무엇인지 새로운 관계를 통해 알아가고 결국 괴로움의 근원과 대면하는 과정 아닐까. 타인의 일방적인 규정에서 벗어나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가운데 몸도 마음도 자란다. 수현을 만나 아파트 옥상에 갇혀보기도 하고, 분식을 나눠 먹고, 수현을 따라 학원 대신 집회 현장에도 나가보면서 유원은 마음의 근육을 단련해나간다. 한편 책을 읽다 보면 우리 시대 청소년의 삶이 가깝게 다가오는 기분도 든다. 대학에 가려면 학생부종합전형은 어떻게 채울지 어떤 전형을 택할지 같은 진학 고민이 크게 자리 잡은 가운데 SNS와 친구 관계, 떡볶이, 아이돌 ‘덕질’도 함께 얽혀 있는 학생들의 일상이 세심하게 그려져 있다.
우리, 함께
“나는 한때 세상에서 나를 가장 미워했던 아이의 어깨에 기대어서 꿈을 꾸기 시작했다. 편안했다.”(221쪽)
“세계 전체에 희박한 것들을 굳이 내게서 찾으려는 시도가 폭력적으로 느껴진다.”(191쪽)